[ZOOM·4] 가성비 최고의 기적, 스타트업 2019 출판 나들이
출판은 기적입니다. 그것도 가성비가 가장 높은 기적. 그럼에도 우리가 그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입장벽 때문이죠. 도대체가 독서는 처음부터 재밌지가 않은 것입니다. 담배와 술이 습관이 될 수 있는 건 첫 모금부터 쾌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게임과 도박에 쉽게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세상 온갖 지혜가 모두 담겨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나도, 책은 태생이 시작부터 쾌감을 줄 수가 없는 매체이므로, 선택지에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말 10분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이 무슨 조선시대 유생 같은 소리냐고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과 통로 또한 다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여기,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방법이 있으니 같이 손잡고 출판계 안뜰이나마 잠시 들여다보자고 청하려 합니다. 종이책에 밑줄 그어가며 읽어보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밑줄을 잘 수습해 한 눈에 꿰어주는 곳이 있으니, 주말 10분만 내어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달 남짓 국내 유력 매체 6곳(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의 ‘신년기획’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간 신문을 접하지 않으셨던 분들, 접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잊어버리셨다는 분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계셨다는 분들이 이번 연재를 통해 각자의 변화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미진한 부분이 저 스스로에게 남아있었습니다. 핵심 콘텐츠에 대한 검토를 미처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년기획을 통해 전망하는 ‘2019년 출판 트렌드’입니다. 2019년 12월31일. 한 해를 돌아보면서, 지식 경영의 첨단에 서지 못해 놓쳐버린 비즈니스 기회를 젖은 눈으로 회상하기 전에, 이 작업에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요.
2019 주목해야할 도서
2019년 1월 첫째주,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아래 기사 출처 참조)은 올해 주목해야할 도서 40여권을 선정했습니다. 각 언론사 출판 담당 기자들이 주요 출판사 40여곳에 연락해 올해 해당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인 핵심 도서들을 추려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토대로 주제별로 책을 분류한 뒤 요점을 간추린 것입니다. 아직 올해 1분기도 채 넘기지 못한 시점이니만큼, 이 기획기사는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경향신문> [1월5일(토) 17면, “아픈 역사 되짚고 당대 현실 마주하고 ‘독자의 마음’ 훔칠 역작들이 쏟아진다”]
**<한겨레신문> [1월4일(금) B1면, “돼지가 책 속에 빠진 해”]
**<중앙일보>는 [1월5일 <중앙SUNDAY> 20면, 문학평론가 신형철(조선대)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 “좋은 책은 뼈아픈 인식의 충격을 준다”를 통해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보여줬다.]
지난 2월11일 [스타트업이 ‘유관순’을 맞이하는 법’]이란 글에서 앞서 밝힌 바 있듯, 올해는 역사의 해(年)가 될 것입니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담론을 발굴해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온 출판계 역시 결코 이 흐름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요. 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기획기사 서두에 ‘역사’를 키워드로 놓고, 해당 분야 도서를 우선 선정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역사연구회>에서 기획한 ‘3·1운동 100주년 총서’(휴머니스트·총5권)와, 권보드래 고려대(국문학) 교수의 <3·1운동의 문화사>(돌베개)가 먼저 나란히 소개됐습니다. 3·1운동을 전후해 개항기와 식민지 시대 생활사에 대해 각 분야 학자들이 쓴 <한국 근현대 생활사 큰사전>(서해문집)도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본 탐구
3·1운동과 임정 100주년,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성찰은 자연스레 일본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갑니다. 재일조선인 학자 정영환(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는 <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푸른역사)에서 해방 후 5년간 재일조선인 운동사를 재조명합니다. 문헌학자 김시덕(서울대)은 <일본인 이야기>(메디치미디어·총5권)의 첫 편으로 16~17세기 전환기 일본을 살핍니다. 일본 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는 <민주와 애국>(돌베개)에서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을 키워드로 일본의 기원을 추적합니다. 이 책은 일본 출판계에서 ‘일본 전후 사상사의 대서사시’라는 수식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저작이라는 평입니다.
文 정부의 기조, 그리고 스타트업
문재인 정부는 한국 역사의 숭고했던 순간에 대한 폄하만큼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최근 ‘5·18 망언’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3·1절 99주년 기념식엔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습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낭독한 기념사 영상은 국민의 마음을 울리며 SNS와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임정 100주년을 기념해 청와대는 다가오는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출판계 뿐만 아니라 정부 역시 이렇듯 2019년을 대한민국의 뿌리를 되짚는 ‘역사의 해’로 기념하려는 의지가 뚜렷합니다. 스타트업을 포함해 올해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모든 기업인들은 이같은 기조에 역행하기보다 기념과 성찰의 물결에 동참하면서 시대와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빅히스토리의 시대
인류 문명과 미래를 전망하는 서적들도 연달아 출간됩니다. 일급 베스트셀러 저자들도 즐비합니다. <총균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성공한 국가들이 위기를 극복해온 과정을 다양한 학문을 동원해 보여주는 <대변동>(김영사)으로 ‘문명사 3부작’을 끝맺습니다. <마음의 미래>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가쿠는 <인류의 미래>에서 화성 거주 프로젝트 등 지구 밖 인류의 운명을 돌아봅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까치글방)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큰 물음에 대한 호킹의 마지막 대답과 제언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거의 전 매체에서 서평으로 다룬 바 있습니다.
종합하면, 2019년 출판계의 화두는 ‘한국 근현대사 & 인류의 미래’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인류 문명의 미래’는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닐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이 산업 전 분야에 도입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진단하는 책들이 최근 몇 년 새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 주제가 올해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되새겨보는 새로운 역사적 원년(1919년) 이후 100년이 흘렀다는 시대적 맥락 때문입니다. 안과 밖을 두루 조명하는 책들이 연이어 출간될 예정인만큼, 이들이 간직한 성찰을 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출판면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그 역할을 물론 우리 스타트업계가 다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올해 펼쳐질 지식의 풍경을 위와 같은 트렌트로 거칠게 그려놓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주말마다 각론을 잡아갑시다. 핵심은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6개 신문사의 출판면을 유심히 봐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작업을 14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저 즐거워서 하는 일입니다. 보통 일간지들은 금요일이나 토요일(자세한 정보는 글 하단 참조)에 적게는 2면 많게는 3~5면까지 해당 주간의 신간을 소개합니다.
신문사 문화부는 매주 월요일, 해당 주에 머리기사로 다룰 책을 선정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데, 베테랑 기자들은 보는 눈이 거의 비슷합니다.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나누는 안목이 말이죠. 때문에 누가 위에서 관리한 것도 아닌데 프론트 서평에 공통적으로 실리는 책이 한 주에 1권은 반드시 나오게 됩니다.
그 책은 좋은 책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기자들은 시의성과 전문성, 책에 들인 정성 등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책을 고릅니다. 그런데 그 평가로 선택된 책이 신문사의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공통된 것이라면 좋은 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게 해당 주간 머리기사 서평을 맡은 기자는 향후 나흘간 그 책과 씨름합니다. 마치 어려운 취재원과 겨루듯이 말이죠.
기자들은 습성상 핵심이 뭐냐, 근거는 뭐냐, 시사하는 바가 뭐냐를 나눠서 비판적으로 읽어나갑니다. 논리에 무리가 없는지를 파악하면서요. 걸작을 읽었다고 현장 비즈니스에서 그 지혜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가 촘촘히 들어찬 책들은 쉽게 휘발돼버립니다. 요약과 발췌를 통해 생각을 정돈해둬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기초 작업을 기자들이 직업적으로 매주 해오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봅시다.
거장의 제안 “트렌드라인!”
역작 <빈 서판>(Blank Slate)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하버드대)는 올해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 기고한 ‘세계대전망’에서 “저널리즘의 특성은 암울함을 보태는 것이다. 실패를 보도하는 것이 직업적 의무로 여겨진다. 성공을 보도하면 홍보로 간주된다”면서 “세상을 이해하려면 헤드라인이 아니라 트렌드라인을 따라야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스티븐 핑커의 말처럼,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맥락입니다. 그 일을 손수 나서서 대신 수행해주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는 그저 가끔 그들의 보금자리를 방문해 골자만 취해오자는 것입니다. “그 정도 지식과 통찰 없이도 여태껏 잘 운영해왔어!”라고 고집하는 분을 굳이 설득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차별화를 고민하고,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통찰을 구하는 분들에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이 자리를 빌어 조심스럽게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참조>
** 이 글을 읽고 혹자는 지식과 담론의 연성화를 우려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통찰을 받아들이려면 온몸으로 텍스트와 씨름해도 모자른데, 기자들이 요약한 기사로 이를 대체해보자는 제안이 터무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그 모든 비판을 수용합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소개하는 것은 첫째 제가 연재하는 <플래텀>이 스타트업 전문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스타트업계 분들이 비즈니스에 유익할 지식을 빠르게 얻어가는 창구입니다. 둘째, 지식을 연성화해서라도 그것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다면, 학문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 번역서는 정보 시차를 감안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번역을 거치면, 적어도 현지와 국내 출간 사이에 1년 남짓 지식 격차가 발생합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기에, 1년은 너무나 결정적일 것입니다. 때문에 직접 원서를 읽으면 더 빠르게 고급 정보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해외 유수 매체의 서평란도 주의 깊게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나 미국 <뉴욕타임즈>(NYTimes)가 매주 주말에 싣는 서평지 <뉴욕타임즈 북리뷰>와 영국 <가디언>(Guardian)이 싣는 <가디언 북리뷰>는 그 수준과 품격이 매우 높습니다. 이 기사들을 모아 매주 단행본으로 묶어도 될 정도입니다. 두 사이트 모두 즐겨찾기 해두십시오.
** 국내 유력 매체들의 서평란은 다음과 같은 날짜에 실립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은 매주 토요일자에, <한겨레신문>·<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자 출판면에 실립니다.
필자 소개 : 레이먼드 권(Raymond Kwon) / 前 <한겨레신문> 기자, 어쩌다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콘텐츠 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카운터컬쳐>(Counter-culture)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mail : raymond@counter-cultur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