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한국인2019] ‘이 서비스 없이 어떻게 살았지’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혁신
“한미일 B2B 영업프로세스는 다르다. 일본과 미국은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도메인에서의 레퍼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잘 한다면 큰 기업에서 열린 자세로 대한다. 한국은 도메인보다는 대기업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
오늘(2일)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주최로 분당 그린팩토리에서 개최된 여섯번째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서 B2B영역에서 사업을 하는 테크,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자 세 명과 500스타트업 코리아 임정민 대표가 ‘창업가가 말하는 진짜 혁신’을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패널로는 이날 오전 세션에서 발표를 진행한 차영준 ODK미디어 대표,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 이진하 스페이셜 CPO가 참여했다. 이하 패널토론 전문.
가벼운 개인 질문부터 해보자. 이진하 CPO는 한미일 3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업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나.
이진하 : 처음 대학원을 갈때만 해도 박사를 생각하고 아카데믹한 패스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쓴 논문을 사람들이 많이 안 읽더라. 조금 허무하다 생각했다. 몇십년 후 내가 생명력을 다해 하는 일에 논문만 쌓이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지금은 사람과 기술과 프로덕트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내가 만든것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보람있는 일이다.
차영준 대표는 25개 직업을 거쳤다. 가장 좋았던 직업과 힘들었던 직업은 뭐였나
차영준 : 미국 편의점에서 일이 재밌으면서도 힘들었다. 열심히 하니 매니저가 디스플레이 하는 법도 알려주더라. 다만 저녁 시프트까지 하고 학교에 가는게 힘들었다.
이창수 대표는 한미일에서 창업 경험이 있다. 아울러 한국에서 첫째, 일본에서 둘째, 미국에서 셋째 자녀가 태어났다. 아이들 국적은 어떻게 되나.
이창수 : 태어난 나라는 각각 다르지만 국적은 모두 한국이다. 아이를 키우기 제일 편한 곳은 서울이다. 양가 어른도 있고 집안일을 돕는 사람 찾기도 좋다. 미국은 그런 인프라는 부족하다. 그래서 리모트로 출퇴근 시간을 아껴서 매꾸고 있다.
차영준 대표는 투자에 대해 모르고 창업했다고 했다. 임원이었던 사람한테 2만 달러 수표를 받은게 첫 투자유치다. 책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차영준 : 학교에서 2주간 프로젝트를 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사업화를 결심했는데, 어느 추운 날 팀원이었던 스위스 친구가 전 재산이라며 월남국수집에서 수표를 건내주더라. 학교 교수가 로펌을 소개시켜줘서 계약서도 썼다. 투자를 받으려면 계좌나 계약서 등이 필요하더라. 미국서 변호사를 만난것도 처음이었고 2만 달러 받는게 그런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창수 대표의 투자유치 스토리도 인상적이다. 글로벌 브레인 유리모토 대표와의 인연은 업계서 회자되었다. 유리모토 대표와 이 대표가 처음 만나는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이 대표가 일본어가 가능해서 소개시켜줬던 기억이 있다. 당시 투자유치를 준비중이었나.
이창수 : 배경 설명부터 해야겠다. 파이브락스는 아블라컴퍼니라는 회사에서 시작되었다. 파이브락스는 아블라컴퍼니에서 만들던 백그라운드 서비스였는데 피봇한거다. 유리모토 대표를 만난건 내가 파이브락스 대표가된지 몇 달 안 됐을 때다. 당시엔 투자 IR을 심각하게 고려하진 않았다. 대표로써 책임감이 궤도에 오르지 않았을 시절이다. 회사가 피봇되며 직원을 교체하는 상황이라 힘들기도 했다. 다만 일본에서 사업을 꼭 해보고는 싶었다. 그래서 일본쪽 콘퍼런스를 다니고 있었다.
그해 5월 스타트업 행사서 유리모토 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글로벌브레인 대표인지도 명함을 받고서야 알았다. 시간이 없다해서 5분간 설명한다고 했다. 영어로 서비스 설명을 했는데 큰 관심을 가져줬다. 그날 밤 메일이 와서 이튿날 삼성동 코엑스에서 보기로 했다. 공동창업자인 노정석 대표와 함께 만났다. 나는 사업 초짜였지만 노 대표는 경험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서비스 가치는 설명할 수 있었지만 밸류나 투자금은 잘 몰랐다. 노 대표가 밤 사이에 투자자가 알아야하는 밸류와 레이즈, 주주구성 등을 정리해서 가져왔다. 일본에서 여러번 가서 게임사 등에서 피치를 했다. 면접같은 거였다. 그렇게 투자유치가 되었다.
스페이셜도 빠르게 투자유치를 했다. 이 CPO의 테드 영상과 연관있나.
이진하 : 테드는 스페이셜과는 크게 상관 없다. 테드 무대에 선 건 펠로우로 초청받아서 했을 뿐이다. 4년 뒤에 투자를 받았는데, 이 영역에서 열심히 한 것을 투자자들이 높이 사줬다. 다른 케이스에 비해 수월하게 받았다고 본다.
투자는 VC가 오길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창업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나.
이창수 : 파이브락스 때는 우연히 한 번 투자자와 조우해서 IR을 한 것이 투자유치까지 이어졌다. 올거나이즈는 이전 파이브락스 시절 투자자가 다시 들어왔다. 내가 다음 창업을 하면 무조건 투자한다는 엔젤들이다. 창업 몇달 전에 이 아이템을 설명했고, 오래가지 않아 투자유치가 이루어졌다.
회사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 협업과 조직문화 유지에 어려움이 따른다.
차영준 : 같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구글과 삼성전자의 문화가 각각 다르다. 어떤 문화가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계속해서 좋은걸 받아들이고 테스트하는 문화다.
ODK미디어 직원 60명이 서울과 미국에서 리모트로 일한다. 업무 효율에 만족하나.
차영준 : 잘 하고 있어도 만족하면 안 된다. 더 잘 할 수 있는 룰이 있다고 생각한다. 움직이고 도전을 하면서 뛰어넘는게 중요하다.
세 기업 모두 B2B비즈니스를 한다. 한미일 B2B는 어떻게 다른가. 아울러 대기업등과 일할 때 기술이나 정보유출, 불공정거래 등 이슈는 없나. B2B영업의 과제가 있다면.
이창수 :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 미국에 가서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냅챗이 왜 좋은지, 잘 되는지 고민하는 사람은 못 만든다. 하지만, B2B 비즈니스는 어디서 하건 간에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 문화와 발주 프로세스는 다를 수 있지만, 메가트랜드에 확신만 있다면 글로벌 서비스가 될 수 있다.
한미일 영업프로세스는 다르다. 일본과 미국은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도메인에서의 레퍼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잘 한다면 큰 기업에서 열린 자세로 대한다. 한국은 도메인보다는 대기업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도입 시간은 아무래도 미국이 짧다. 소싱팀이 빠르게 움직인다. 일본은 단계별로 거칠 것이 많다. 워크프로세스가 어떻게 바뀌는지 돌려가며 신중히 평가한다.
이진하 : 혁신은 소비자보다 B2B에서 먼저 발생한다. B2B는 새로운 기술이나 패러다임 변화에서 가장 먼저 변하는 영역이다. 일반 소비자는 그 다음이다. 멕킨토시가 사무영역을 바꾼뒤 대중화 되었듯이 말이다. 증강현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린 회사에서 먼저 할 수 있다고 보고 접근하고 있다. 물론 기본 플랫폼이 준비되면 소비자에게 가게 될거다.
미국과 한국 기업을 비교해봤을 때 혁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어떤가.
이진하 : 한국은 의사결정을 맨 위에서 하는데 반해 미국은 실무자 직급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게 다르다.
차영준 대표는 연구실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했다. 이진하 CPO는 MIT미디어랩 출신이다. 학교가 어떤 역할을 했나.
차영준: 학교에서 시직한 것이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업계 경험자들로부터 양질의 피드백도 얻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3~4년 뒤에 학교에서 사업 준비하며 고민했던 프로젝션을 보니 85%가 맞더라.
이진하 : MIT미디어랩은 일반 학제는 아니다. 융합하고 연결하고 문제를 발견하는 곳이다. 조이 이토 학장(소장)조차 학생들한테 ‘졸업할 생각 말라’고 말하고, 논문대신 데모를 보여달라고 하는 곳이다.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고가 넓어지는 장이었다.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인터넷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나.
이진하 :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뭔가를 배운적이 없다. 누가 뭘하는 것을 보고 학습한게 많다. 가르치려는 사람보다 배우고 싶은 롤모델이 학교에 많았으면 한다. 훌룡한 이들이 인생 어느 시점에서 학교로 가서 후학에게 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차영준 대표는 콘텐츠 라이센스는 어떻게 해결했나. 사업초기부터 해결해 나갔나.
처음에는 만들어진 시장이 아니어서 방송국이나 제작사의 서포트를 많이 받았다. 그들을 만나 시장 상황과 합법화를 설명하며 믿어달라고 했다. 그게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콘텐츠의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한다.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더 빠르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데 아이디어, 팀빌딩, 기술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건 뭐라고 보나.
이창수 : 혁신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정답은 없을거다. 내가 생각하는 혁신기업은 ‘이 회사 없이 어떻게 살았지’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주는 회사다. 그런 회사라면 세상에 대단한 기여와 가치를 만들낸거다. 그걸 만들어내려면 모든 구성원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를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회사문화를 만들 때 대표의 그릇이 회사의 그릇이 된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고 공감한다.
이진하 : 철학이 필요하다. 회사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팀과 고객을 하나로 모아주는게 철학이다.
차영준 : 실행하고 포기하지 않는거다. 혁신은 기존것을 바꾸는것 아닌가. 케이스마다 틀리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도해 바꿔나가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