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人] “세상을 바꾸려는 스타트업의 용기를 느낀 3년이었다” 김홍일 센터장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며 깨달은 건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고뇌가 내 30년 커리어의 치열함보다 더 깊고 넓단 거였다. 나는 조직 안에서 조직의 힘으로 세상을 살았지만, 창업자들은 절박함과 간절함 속에서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다. 존경스럽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우리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될 거다.”
28일 퇴임하는 김홍일 디캠프-프론트원 센터장(은행권청년창업재단 상임이사)이 3년의 임기를 마치면서 밝힌 소감이다. 그는 “30년 사회생활에서 3년의 디캠프 센터장 역할은 의미있는 기간이었다”며, 인터뷰 내내 스타트업과 디캠프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퇴임 후 창업 계획이 있음도 밝혔다. “자산운영사, 창투사 등 사업 제안은 많이 받았다.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창업을 할거다.”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을 만나 재임 기간 동안의 소회, 스타트업 생태계를 향한 제언을 들어봤다.
디캠프-프론트원 센터장을 마무리 하게 됐습니다. 지난 3년을 회고해 주신다면요.
1991년부터 사회생활을 했으니 올해가 30주년이에요. 27년 간 기업 생애주기 가장 오른쪽 기업들을 경험했는데, 지난 3년은 가장 왼쪽 기업들을 만나는 독특하고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다른걸 떠나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게 가장 좋았어요. 겸손을 더 배웠고, 은총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젊은 에너지, 세상을 바꾸려는 용기를 피부로 느꼈어요.
고영하 한국엔젤협회 회장이 “한국 창업계는 디캠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호평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디캠프가 국내 창업생태계에 일조를 했다는 의미일텐데요.
출연금을 통한 최초의 창업 지원 사례라는 측면에서 전과 후가 구분될 수는 있을거에요. 8년 전에 시작했지만, 그걸 위해 끊임없는 현장 작업이 앞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국내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의 한계, 고용의 한계를 풀어내야 하는 흐름이 있었고 스타트업이 대안이라는 판단을 일찌감치 한거죠.
디캠프의 모태가 되는 은행권이 창업 생태계 조성에 의미있는 역할을 한겁니다. ‘전통적’, ‘보수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듣는 은행권이 ‘파격’을 선택한 건데요.
은행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조직이자 국가별 차이가 거의 없는 조직입니다. 은행은 원가에 해당하는 예금자의 돈은 무조건 돌려줘야 하고 수익의 근거인 대출은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해요.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은행권이 대규모 자금을 출연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는 건 의미가 있어요. 저는 기성세대가 시도하는 젊은 청년세대에 대한 응원이라고 생각해요. 작게 보면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미래 고객을 찾는 일일거에요. 크게 보면 창업가의 혁신과 역동성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확보하게 하는 거고요. 사회 시스템이 활성화된다면 종국에는 은행권에도 도움이 될겁니다.
3년간 스타트업을 최일선에서 만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간접 경험한 스타트업과 직접 만나본 스타트업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제 커리어를 돌아보면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해요. 은행, IB, 자산운용, 보험업계에 몸담으며 나름 성과도 냈죠. 지난 3년 간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며 깨달은 건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고뇌가 제 30년 치열함보다 더 깊고 넓단 거였어요. 저는 조직 안에서 조직의 힘으로 세상을 살았지만, 창업자들은 절박함과 간절함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어요. 존경스럽죠. 스타트업 대표들이 우리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될 거에요.
기억에 남는 스타트업이 있다면요.
우선 하이, 한국창의성학회, 엔포마레 등 디데이(디캠프 월례 데모데이)에 참가한 교수 창업가들이 떠올라요. 존경받는 학자가 시험받으러 디데이 무대에 나온거에요. 그들의 도전이 학생들에게도 귀감이 됐어요. 그리고 연쇄창업가도 기억에 남아요. 콥틱, 알고케어, 알바체크가 그런 사례죠. 가장 감사한건 끈기있는 도전자들이에요. 디버, 자버가 그런 경우죠. 자버는 5번 디데이에 도전해서 무대에 올랐고, 디버도 4번째에 섰어요. 창업가의 기본 자세인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에요. 디데이를 끊임없이 찾아준다는 것, 재도전해준다는 것이 무척 고마웠어요.
퇴임일인 28일 디데이가 81회를 맞이합니다. 디데이 관문이 초기 창업자가 넘기에 높아졌다는 의견이 있어요.
오해에요. 통계적으로 디데이 무대는 극초기 기업이 더 많이 서요. 극초기 기업만 한다는 것도 도그마일거에요. 디데이 무대는 누구든 올라올 수 있어야 하고 간절함의 차이라고 봐요. 디데이는 청년을 나이로 구분하지 않아요. 학력, 성별도 묻지 않죠. 실패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창업을 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라고 봐요. 미국에서 성공한 CEO의 평균 나이는 45세라는 조사도 있잖아요. 창업 지원에서 청년의 나이를 39세로 못 박는 건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데이에 참가한 교수 창업가 중 50대, 60대 도전자도 있었어요. 장년 창업가에게도 젊은 창업가와 마찬가지로 박수를 받아야 돼요. 보장된 길을 벗어난 용기 있는 시도니까요. 그런 도전이 많아야 우리 사회가 더 긍정적으로 변할 겁니다.
재임기간 세계 최대규모 창업 지원공간 ‘프론트원’ 개관을 주도했습니다.
이전까지 우리 경제체계는 공장, 굴뚝, 컨베이어밸트 등 자산 위주의 경제였어요. 그런 경제에서 지식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에요. 지금은 손에 잡히는 제품에 지식을 더해서 고도화하고 글로벌화하는 산업 흐름이에요.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굴뚝없는 지식 공장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그걸 이룬 것이 지난해 오픈한 프론트원이에요. 제가 뭘 했다기 보다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많은 도움을 줬기에 가능했어요. 정부가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청년활동기지로 결정을 해줬고 민간 기관도 적극 동참해 줬어요. 특히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님이 큰 역할을 해주셨어요. 이렇듯 다양한 주체의 지원 속에서 프론트원 입주 스타트업은 101개사, 임직원 수는 780명에 달해요. 또한 파트너사는 12개사, 154명이에요.
디캠프는 재단의 고유 브랜드이고, 프론트원은 합작법인같은 형태에요. 식품회사에서 출시하는 라면도 다양하잖아요. 디캠프와 프론트원은 다른 브랜드이지만 하는 일은 같아요. 프론트원이 혁신의 상징물이 된 것 같아서 보람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그런 기회가 제게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고요. 그 과정에서 고생하며 함께해준 직원들에게도 고마워요. 더 보여주고 싶고, 준비해 놓은게 많은데 팬데믹으로 오픈 못 한 것이 많은 건 아쉬워요.
디캠프는 스타트업 ‘지원’, ‘육성’이라는 말보다 ‘지지’와 ‘응원’이란 표현을 씁니다. 어감 차이가 있습니다.
지원, 육성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우월적 지위, 일방적 방향에 거부감이 있어요. 기존 조직이 창업자의 새로운 혁신과 아이디어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창업자들만큼 절박하지도 않고 그들만큼 이해할 수도 없어요. 창업자들이 리더이고 무대의 주인공이에요. 우리와 같은 기관은 무대 밑과 뒤에서 보이지 않게 창업자들이 별처럼 빛나게 하고 응원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에서 디캠프는 공간 철학과 운영 방침이 국내서 가장 개방적입니다.
창업자 상당수는 표시되지 않는 꿈만 있어요. 그들이 자신과 사업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프로그램 기획도 중요하지만 열어놓고 지속화시키는 게 중요해요.
디캠프는 LP(출자자) 역할도 하지만 투자를 직접적으로 집행하는 VC(벤처캐피탈) 역할도 합니다.
밸류체인이라는 것, 업의 본질을 동료들과 자주 이야기했어요. 현금 투자와 같은 직접적 투자는 가장 좁은 의미의 투자에요. 입주 공간을 제공하고 데모데이 무대 판을 여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사회투자라고 봐요. 부임 이후 디캠프만의 투자 철학이 무엇인지 몇 개월간 내부 토론을 했죠.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3D(Dream, Dedication, Devotion)에요. 자신이 꿈꾸는 바를 전파하여 긍정적인 사회효과를 창출하고, 명확한 문제인식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완전하게 몰입하는 스타트업이 우리의 투자 대상입니다. 아울러 디캠프는 인내자본으로써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도적 금융에서 소외된 초기기업에게 중점적으로 투자하여 장기적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하려고 해요.
투자는 어떤 스타트업이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초기기업일수록 정량적 지표 보다는 대표의 역량과 잠재성 등 정성적인 부분이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보통 투자유치가 잘 되는 기업을 보면, 집중하고 있는 사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인지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많이 고민한 경우가 많아요. 또 경쟁사 및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고, 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경험 또는 대표자의 역량이 있어요. 단순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시장 규모와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 여부도 투자 의사결정의 중요한 요인이죠.
스타트업 투자 IR(기업설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IR을 들으면 바로 ‘될 것 같은 사업’의 판단이 서나요?
슬라이드가 훌륭한 IR이 뭔가를 보장하지 않아요. IR은 검토 과정 중 하나일 뿐, 결국은 사람이에요. IR 과정에서 대표자가 그 시장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기 위한 수익 구조를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봐요. 대표자 또는 팀이 얼마나 사업에 몰입되어 있고, 사업을 충분히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여부를 보는 거죠.
디캠프를 ‘인내 자본 투자회사’라고 정의하시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디캠프는 비영리 재단이자 공익법인입니다. 공공기관이나 비영리기관은 영리기관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어요. 출연금, 기부금에 의해서 운영되기에 돈을 퍼준다는 인식도 있죠. 디캠프는 기부금이라는 인내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투자회사에요. 더 큰 리턴을 측정가능하게끔 하는 조직이라고 이해하면 될거에요. 자선기관이 아니라 절차와 투명성, 효율성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내자본을 운영합니다. 당장의 회수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수되는 것을 지향해요. 세상을 바꾸는 창업자들에게 투자하는 조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재임기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론칭했어요. 여러 외부기관과 콜라보도 많았어요.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다소 폐쇄적이라고 생각해요. 스타트업과 창업은 기존 세상을 바꾸는 거잖아요. 기존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건 아니라고 봤어요. 창업 생태계에서 상식처럼 알려진 것도 기성세대는 모를 수 있어요. 기존 세상과 연결을 고민한 것이 콜라보 형식이에요. 아울러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알리는 것도 신경 썼어요.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고 있을 때 변화가 자연스럽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디데이도 최근 몇년 간 콜라보를 통해 스타트업처럼 도전하고 변화해왔어요. 외부 기관과 파트너십을 통해 보다 다각적인 시각으로 스타트업을 선발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 했죠. 특허청, 과기부, 산업부 등 정부 기관과 공동 주최했고, 부산시, 광주시와 함께 지역 확대도 진행했어요. 분야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서울대 의과대학, 퍼시스 그룹, DGB금융그룹, 신한카드 등과도 함께 했죠. IFC, 홍콩경제무역대표부, 홍콩투자청 등 해외 기관과 협력하기도 했고요. 서울대 의과대학과의 협업은 사회 파급효과가 컸던 사례에요. 본과 2학년 대상 1학점 과정이었지만, 주 4시간씩 깊이 있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정해진 진로 외 다양한 세상이 있음을 인식하게 한 계기가 됐어요. 디데이를 함께 하자고 연락오는 외부 기관은 많아요. 디캠프가 진정성을 유지할 수있는 범위 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행될 겁니다.
스타트업 거리축제 ‘이프(IF, Imagine Future festival)’도 2020년에 실질적으로 스타트업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강남구청과 파트너십을 맺고 코엑스라는 대중적인 장소에서 대규모로 했죠. 강남구청에서 물심양면 힘써준 덕에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고요. 코로나 시대에 맞춰 ‘스타트업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컨셉으로 하이브리드 페스티벌로 선보였어요. 단순 홍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스타트업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삶 속에 스타트업이 스며들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디마인드’도 의미있는 사례에요. 창업자는 불안감, 외로움 속에서 홀로 싸우는 존재입니다. 투자유치나 매출성장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창업자의 정신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은 찾기 어려워요. 작은 조직일수록 리더의 에너지가 중요해요. 즉각적으로 필요해 보이는 숫자의 성장도 좋지만, 대표자의 마음을 케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획했어요.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을 초빙하여 창업자의 솔직한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형식의 세미나도 진행했고 입주사 대표자를 대상으로 1:1 심리상담도 운영했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창업자들이 위안을 많이 받는다고 해요.
중년 인재들의 역량과 경험을 스타트업과 연결하는 ‘멘턴살롱’ 프로그램도 인상적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시니어 인재가 스타트업에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스타트업의 열정과 경력자의 경험이 연결될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기대하며 론칭한 프로그램이에요. 서로 가지고 있는 것과 부족한 것을 교환하게 하고 싶었죠. 기성세대가 축적한 경험을 청년세대에 전하고,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의 열정을 일깨우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금융권, 기업, 공공기관,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 평균 업력 26년 경력자 14명이 이 과정을 수료했어요.
스타트업에게는 경력자의 업력, 네트워크 등이 사업 성장에 도움이 돼요. 일례로, 멘턴살롱에 참여한 교육계 30년 이상 경력자는 공교육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스타트업 두 곳에 실질적인 자문을 진행했어요. 또 은행과의 협업이 필수적인 핀테크 스타트업에는 금융권에 27년 간 몸담은 멘턴이 의미있는 역할을 했고요. 스타트업과 기존 산업군 네트워크가 연결된거죠.
교육생들에게는 재취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계기이기도 했어요. 본인이 가진 경력과 능력을 가지고 스타트업계와 함께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총평이 다수였어요.
스타트업은 시장에서 80~90%가 실패합니다. 실패가 치명적 리스크가 아니라 경험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어진 보기에서 정답을 선택하는 시험제도부터 폐지해야 해요. 세상에는 수천 개의 보기가 있고,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정답은 지금과 같은 개별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결국 기성세대가 변해야 해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창업가들에게 지금부터라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뭘까요?
보통 진성 고객,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실패한다고 봐요. 소비자 입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는 구매 후 비용을 지급하는 거에요. 비용을 먼저 받으려고 하면 서비스를 구매할 사람은 없을거에요. 기업의 생존도 수익이 먼저가 아닙니다. 수익은 결과에요.
반면에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어떤 DNA를 가졌다고 보세요.
업의 본질 또는 고객의 잠재된 니즈를 다른 경쟁자보다 먼저 정확하게 찾아내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할거에요.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치열해야 합니다. 공부 머리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죠.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를 하는 스타트업이 성공에 한 발 더 다가갈거에요.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오프라인 ‘접촉’의 시대에서 온라인 ‘접속’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망하고 논하는 건 제 능력 밖이에요. 다만, 지금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혹은 두려워서 접속으로 세상과 교류하고 있지만, 인간은 결코 접속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봐요. 한자 사람’인(人)’은 둘이서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잖아요. 그게 인간이에요.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업무적으로는 원격,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는 분명히 가능할 거에요. 하지만 그런 트랜드가 인간의 본질을 다 해결할 거라 보지는 않아요.
반강제적으로 비대면 시대가 됐습니다. 어떤 스타트업이 각광받고 살아남을까요. 살아 남는 걸 넘어 성장,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만화책과 공상소설이 현실이 되고 있죠. 지금까지 가져온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농경시대의 경험과 산업화 시대의 부품화된 인간상을 완전히 버려야 해요. 인간의 욕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안전하게 해결해주는 바이오 등 오프라인 사업이 각광받을 거라 예상해요.
이 시대에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앞서는 강점은 뭘까요.
대기업은 기업 생애 주기상 완성된 체제를 의미해요.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시작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쇠락하는 것이 숙명이에요. ‘이창업 난수성(易創業 難守成)’이란 말이 있잖아요.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이에요. 스타트업은 작기 때문에 유연할 수 밖에 없고, 대표자의 절박함이 조직 전체에 그대로 투영돼요. 항공모함과 작은 보트의 항로 변경이 다를 수 밖에 없고 바닥에 걸리는 암초도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위기의 상황에서 간절함의 차이가 있어요. 대기업은 자본의 힘으로 호흡기를 붙여 죽지 않고 버틸 수는 있을거에요. 오너는 절박하나 직원들은 그렇지 않아요. 스타트업은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는 조직이에요. 위기를 피부로 느끼느냐, 문서로 느끼느냐는 큰 차이에요. 임직원이 간절함과 절박함을 공유할 수 있기에 기민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죠. 스타트업은 문제와 답을 그 과정에서 찾아내요.
매년 창업 생태계가 넓어지고 풍성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 기업, 여성 스타트업은 소수입니다.
한국사회는 한 세기, 100년에 걸쳐 신분사회에서 평등사회로,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급격하게 변화했어요.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농공상의 신분제 유령이 여성차별로 남아있어요. 거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 소비 의사 결정 주체가 여성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죠. 한편으로 이런 부분이 여성 창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다만 여성 전용, 여성 우대는 또 다른 왜곡을 초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거에요.
창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길 기대해요. 여성들이, 엄마들의 창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많은 것이 달라질거에요. 엄마들이 자녀를 사교육으로 내몰지 않고 그 에너지와 리소스를 창업에 투입한다면 의미있는 변화가 생길겁니다. 가장 좋은 증여는 생존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스킬을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AI의 윤리규칙, 기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어요.
인간의 의사 결정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아요. 인간은 공포와 탐욕 사이에서 활동하고 그걸 논리로 합리화 시키고 글과 같은 기록으로 남겨요. AI 알고리즘에는 코딩한 개인의 경험이 녹아들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벤처와 스타트업이 윤리의식이 없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기술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고, 사회에 의미있는 질문을 남겼다고 봅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거라 전망하세요?
앞서 말했듯이,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단어가 가지는 폐쇄적인 정의에 우려가 있어요. 특정 생태계가 주변 생태계와 연결, 관계되지 않을 경우 단절될 가능성이 높아요. 스타트업은 기존 생태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본질적 모습이잖아요. 좀더 개방적이고 진취적으로 기존 생태계와 부딪치고 협력하며 진화하길 바랍니다.
본인은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세요.
리더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매일 고민할 뿐이에요. 저는 비저너리나 혁신가가 아니에요. 그저 일하는 사람을 일하게끔 판을 조성하는 역할만 했어요. 직원들에게 많이 맡기고 자신감있게 일하게 동기부여를 했어요. 실수와 실패가 당연한 세상이기에 그걸 용인하기 위해 노력했고요. 디캠프에 있으면서 스스로 생각한 역할은 CMO(최고 마케팅 책임자)였어요. 스타트업을 외부 생태계와 대중에게 더 널리 알리는 거요. 그리고 조직을 대신해 화살을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규제든 관습이든 비난의 화살이나 질책을 감당하는 자리요.
매일 지키는 자신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책을 가능한 많이 읽으려고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많이 걸어요. 출퇴근 길에 신부님 강론을 하나씩은 청취하고요. 강론을 듣다보면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건 없더라고요. (웃음)
28일로 임기를 마무리 합니다. 다음 행보를 고민하셨을 거에요.
당분간은 감사한 일을 되새기며 푹 쉴 계획이에요. 다음 일은 쉬면서 생각하려고요. 소소하게는 요리를 배울 계획이에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창업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주변의 권유가 많을 듯싶습니다.
자산운영사, 창투사 등 사업 제안은 많이 받았어요. 아내도 해보라고 합니다. 맡은 일을 내 일처럼 미친듯이 하긴 해요. 그게 직업윤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자는데, 창업까지 한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거에요.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때 어떤 형태로든 창업을 하긴 할겁니다. 영역에 따라 디데이에 나올 수도 있겠죠. (웃음) 우선은 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