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왜 VC는 ‘디지털헬스’에 주목하는가?
새해를 맞이하며 누구나 ‘건강’을 기원하지만 2013년에는 유독 이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다우존스와 미국벤처캐피털협회(National Venture Capital Association)는 600명의 벤처투자자와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고,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TechCrunch)도 헬스케어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을 반영하듯 지난 7일에는 시장 점유율 5위의 클라우드 기반 EHR (Electronic Health Records) 업체인 아테나헬스(athenahealth)가 의사용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에포크라테스(Epocrates)를 2억9천3백만달러(한화로 약 3천1백억원)에 인수했다.
디지털헬스 분야의 투자는 지난해에도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디지털헬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락헬스(Rock Health)가 며칠 전 이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디지털헬스 분야에 투자된 벤처캐피털 자금은 총 14억1천3백만달러(한화로 약 1조5천억원)로 2011년과 비교해 46% 증가한 액수이고, 거래량도 56%나 증가했다. 이 수치는 2백만달러(한화로 약 21억원) 이상을 투자받은 134개 업체를 기준으로 하며 실제 증가폭은 이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의료기기나 생명공학기술 분야의 투자는 각각 4%,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디지털헬스 분야와 대조적이다.
보고서는 또한 지난해 투자 받은 134개 업체 중 반 이상이 5백만달러(한화로 약 53억원) 이상을 유치했고, 투자한 기관도 179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기관은 투자한 업체의 수가 한 개에 불과하며, 세 개 이상의 업체에 투자한 기관은 퀄컴벤처스(Qualcomm Ventures)를 포함해 8개 뿐이다. 퀄컴벤처스는 얼마 전 한국에 진출한 눔(Noom)을 비롯해 5개 기관에 투자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테크크런치의 립 엠슨(Rip Empson)은 디지털헬스 분야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소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분석했지만, 락헬스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할리 테코(Halle Tecco)는 많은 투자기관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고조된 관심을 의미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락헬스는 2012년 이루어진 투자의 1/3 이상이 ① 소비자의 헬스케어 소비를 돕기위한 소비자 건강 참여(Health Consumer Engagement), ② 개인의 건강을 추적하기 위한 도구 및 서비스(Personal Health Tools and Tracking), ③ 의무기록의 저장 및 활용을 위한 EMR/EHR, ④ 병원 업무관리(Hospital Administration) 등 네 가지 분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병원이나 의료진을 위한 제품 또는 서비스에 투자된 금액보다 소비자 건강 분야에 투자된 금액이 약 두배인 3억8천6백만달러(한화로 약 4천1백억원)에 달해 최근 주목받는 퀀티파이드셀프(Quantified Self) 운동이나 캐스트라이트헬스(Castlight Health), 작닥(ZocDoc) 등 소비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러한 관심은 지금 라스베가스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최대의 가전박람회 CES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올 해 참가한 업체 중 건강 또는 운동과 관련된 제품을 선보인 곳은 핏빗(Fitbit), 바디미디어(Bodymedia) 등을 포함해 220개가 넘고, 이는 작년과 비교해 약 30% 증가한 수치이다.
락헬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받은 상위 5개 업체는 캐스트라이트헬스, 23앤미(23andMe), 고헬스(GoHealth), 케어닷컴(Care.com), 베스트닥터스(Best Doctors) 순이며, 이 업체들이 유치한 금액의 합은 총 투자금액의 20%가 넘는다. 특히 1억달러(한화로 약 1천6십억원)를 투자받은 캐스트라이트헬스는 벤처캐피털 인터웨스트파트너스(Interwest Partners)가 시행한 조사에서 프랙티스퓨전(Practice Fusion), 작닥과 함께 기업공개(IPO)가 유력한 업체로 꼽히기도 했다.
- 캐스트라이트헬스는 자가보험(Self-insurance)을 운영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임직원이 병원 및 시술 가격을 직접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B2B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의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캐스트라이트헬스는 지난해 5월 1억달러(한화로 약 1천6십억원)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했다.
- 23앤미는 개인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질병에 대한 유전적 위험을 알려주거나 혈연관계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웹 기반 개인게놈서비스(Personal Genome Service®)를 제공한다. 23앤미는 지난해 12월 5천8백만달러(한화로 약 6백1십억원)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했다.
- 고헬스는 소비자가 직접 의료보험 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돕는 온라인 포털을 제공한다. 고헬스는 지난해 6월 노웨스트에쿼티파트너스(Norwest Equity Partners)로부터 5천만달러(한화로 약 5백3십억원)를 투자받았다.
- 케어닷컴은 약70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온라인 서비스로 유모, 간병인 등 다양한 도우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케어닷컴은 지난해 8월 5천만달러(한화로 약 5백3십억원)의 시리즈 E 투자를 유치했다.
- 베스트닥터스는 전세계 3천만명이 넘는 회원을 대상으로 수준급 의료진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는 B2B 서비스를 운영한다. 베스트닥터스는 지난해 8월 4천5백5십만달러(한화로 약 4백8십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미국은 디지털헬스에 대한 투자가 매우 활발하고, 지난해 투자받은 상위 5개 업체가 모두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소비자 건강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위기는 곧 기회”라고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 지출을 자랑하는 미국 보건의료시스템에 대해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IT와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 문제를 해결할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 시장은 다르다. 1989년부터 시행된 전국민 의료보험과 2000년 시행된 의료보험 재정통합으로 보험회사에 대한 선택권이 배제된 소비자는 고헬스와 같은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크지 않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의료보험료가 근로자의 수와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직원의 건강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금의 보건의료시스템으로 비교적 질 좋고 값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정말 문제나 위기가 없는 것일까. 전 세계에서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한 곳이 한국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자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소비자와 IT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있는 한국에도 올해는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기업이 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