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트렌드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3.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인생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2000년 닷컴 버블시절 엄청 많은 사람들이 KTB로 들어왔다. 1년 사이에 100여명에 가까운 경력직원들이 입사했다. 100명 남짓 되던 KTB 임직원 수도 200명 가까이 불어났다. 그 중에는 내 대학 과친구 조은익도 끼어 있었다.

은익이는 삼성물산에 일찍이 입사해서 근무하던 중 닷컴버블의 열풍에 의해 설립된 골든게이트팀에서 벤처투자까지 해오다 꺼진 버블로 인해 그 팀이 잠시 주춤함에 따라 벤처투자를 본격적으로 하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그때 KTB 인터넷팀에서 신규 인력을 모집한다 길래 그 친구를 팀장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 친구는 KTB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입사한 지 1년 남짓 근무하고 회사를 관두더군. 관두기 전 담당했던 회사가 리얼미디어였고. 그 리얼미디어를 내가 담당하다가 나도 리얼미디어로 옮겼고. 그리고, 2003년 겨울, 리얼미디어도 해외로 M&A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 내 손에 쥐어진 인센티브도 없고 스타트업 생활도 더 이상 흥이 없던 시절 튜브인베스트먼트(현 HB 인베스트먼트)로 옮긴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희우야? 너 다시 영화투자 하지 않을래?”
“어 은익아. 안그래도 스타트업 짜증났었는데, 좋은 소식이군’
“울 회사가 영화펀드에 이어 방송펀드도 만드는데, 너 이쪽 잘 하잖아. 사람 뽑는다길래 널 추천했지”
“고마우이 친구”
“고맙긴, 너도 나 옮길 때 도와줬잖아”

그래서 그 친구 추천으로 난 튜브인베스트먼트로 옮겼다. 옮기자 마자 그동안 추진해 왔던 방송펀드 결성이 완료되었다. 난 그 펀드를 그 친구와 함께 운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방송 콘텐츠와 영화가 주 투자영역 이었다. 그 펀드의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과거 튜브가 운용했던 두 개의 영화펀드 관리를 맡았다. 은익이는 내 손 더러워 진다고 더 이상 영화펀드에는 관여하지 말란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방송펀드 투자에 앞서 본격적인 투자전략을 함께 수립했다. 영화, 드라마, 기타 콘텐츠 영역에 각각 얼마나 투자할 지 비중을 정하고 세부 예상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봐도 답이 안나와 보였다. KTB에서 영화를 처음 투자할 시기에는 영화투자도 제법 수익이 나왔었다. 나의 투자 실적만 추려봐도 IRR은 12% 수준 나왔었다. 그런데, 몇년 사이에 마케팅비/홍보비가 급증하여 투자 수익성이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영화제작(튜브엔터테인먼트)을 직접 운용하는 튜브만의 펀드운용 구조도 작용했겠지만.

영화투자를 계속 하자니 앞날이 불투명할 것 같았다. 펀드라는 것이 수익을 내는 것이 기본인데 영화펀드만은 수익성 측면 보다는 문화라는 특수성이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투자 성격 보다는 지원 성격이 강할 때가 많았다. 펀드에 참여한 조합원들의 구성을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즉, 펀드에 영화 배급사가 투자를 하다 보니 영화펀드의 일정 금액은(때론 상당 부분) 영화 배급사의 작품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영화 투자 후 수익배분은 당연 영화 배급비용, 홍보마케팅비 등을 선 공제하다 보니 배급사는 영화가 망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더군다나 배급사들은 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보유하고 있으니 극장 놀리는 것 보다는 영화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고, 영화펀드에 목말라하는 벤처캐피탈들에 돈 조금 투자해 놓고 레버리지 확실하게 거는 셈이니 얼마나 좋은가. 거기에 극장 손님에게 팝콘/콜라 팔아서도 짭짤하게 수익도 낼 수 있으니. 이런 구조를 너무나 잘 아는 나로서는 계속 영화바닥에 있어야 할 지 의문이 들 수 밖에. 그 시점 튜브 대주주인 문성준 대표에게서 제안이 들어왔다.

“이팀장, 코스닥 기업 하나 인수하려고 하는데 함께 할래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코스닥 기업 하나 보고 있는데, 인수하고 거기 가서 경영에 참여하고 이런 전반적인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요”
“그럼, 튜브 관두고 그 회사로 가야 하는 건가요?”
“그렇죠.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난 영화판에서 발을 뺐다. 그저 영화는 즐기는 대상으로만 놔두었다. 가끔씩 ‘이희우의 영화 까발리기’나 쓰면서. 다시 십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최근엔 영화/콘텐츠 투자 심사역이 콘텐츠 투자 전문 창투사 대표로도 갔고, 콘텐츠 펀드도 1,000억 규모로 대규모화 되고 있으니. 마침 지난 주에 어느 협회에서 영화/콘텐츠 투자 심사역을 만났다. 그 중엔 전에 함께 알고 지냈던 후배도 있었다. 내가 먼저 한마디 꺼냈다.

이 업계엔 전설적인 마이너스의 손이 하나 있으시지”
“마이더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요? 누구신데요?”
“그 분은 말야 10년 동안 VC업계에서 3개의 영화 펀드를 해산해본 경험이 있으시지. 그리고 그 펀드 3개가 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지”
“….”
“지금은 어느 벤처기업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이야”
“…, 궁금한데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내 기준엔 맞지 않아 영화투자를 벗어났지만 거기에 10년 열정을 쏟은 사람은 또 거기서 멋진 길을 찾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인생은 돌고 돈다. 정답은 없다. 하루 하루 쫄지말고 당당하게 즐기면서 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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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회 보기 

  1. 연재를 시작하며
  2.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3. 벤처캐피탈 입문
  4. 미뤄진 인생계획
  5. 영화투자의 시작
  6. 벤처투자의 기초
  7. 닷컴 그 늪에 빠지다.
  8.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9. 벤처캐피탈과 사주
  10.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11.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12.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1997년 KTB 네트워크에서 벤처캐피탈에 입문한 후 현재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를 설립 및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을 위한 고품격 투자상담 토크쇼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교육에 관심 많아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쫄지마! 창업스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그 동안 플래텀에 연재한 글과 새로운 창업이야기를 담은 ‘쫄지 말고 창업(이콘출판)’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 창업, 스타트업, 기업가정신 등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론 그쪽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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