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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0.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벚꽃이 바람에 하나 둘 떨어진다. 4월 중순, 해마다 벚꽃 구경을 갔었는데 올핸 그저 아파트 단지 내 풍경으로 만족하고 있다. 낮엔 제법 봄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사월이 되면 항상 춘래불사춘을 외치곤 했었지, 올해도 마찬가지 였지만. 그래도 봄은 이미 성큼 다가와 있었다.

지난 주에 리얼미디어코리아 정재우 사장님을 뵈었다. 내가 KTB를 나와 2002년부터 1년 반을 몸 담았던 회사. 짧지만 스타트업을 경험했었고 온실이 아닌 야생을 처음 경험했던 곳. 감회가 새로웠다. 

정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리얼미디어를 외국에 멋지게 Exit 하셨지. 돈도 많이 벌었고, 난 죽어라 일만 해주고 나왔는데. 내가 왜 인센티브 계약을 그리 멍청하게 했었는지. 벤처캐피탈에 몸 담고 있었던 사람이. 그땐 그저 KTB를 관두고만 싶었을 뿐, 그래서 구두로 한 인센티브 계약을 믿고 갔었는데…

“이희우 대리, 우리 회사로 제발 오시죠.”

“이렇게 세번씩이나 오라고 하시니. 우선 고맙습니다. 그런데 대우는 어떻게 해주시나요?”

“주식 만주를 드리고, 연봉도 직원들 중에선 제일 많이 드리지요”

“직급은요?”

“직급은 부장급으로 하려고 하는데요…”

“이사가 아니구요?”

“아직 이사 달긴 그렇구요. 우리 직원들 중에 최고 직급이 차장이니 부장으로 하시죠. 이사는 IPO 성공하면 다는 걸루”

“아, 네”

“이번에 오셔서 꼭 IPO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음.. 그러죠. 그럼, 7월 한달 쉬고 8월부터 출근할께요.”

그게 다였다. 난 그 말만 믿고 리얼미디어로 옮겼다. 연봉은 KTB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주식을 준다니. 그런데 입사한 첫 날, 난 알았다 난 일개 종업원이라는 걸. 투자사 담당자로써 접했던 정사장은 입사 후엔 나의 밥줄을 쥐고 있는 오너일 뿐이었다.   

주식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 계약은 VC가 이미 투자되어 있어 해결할 수 있는 폭이 거의 없었다. 정사장의 지분을 무상으로 나에게 넘기는 것도 투자사와의 신주인수계약서 상 불가능하였고, 설령 투자사가 승인을 해둔다고 해도 세무상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스탁옵션도 고가에 투자한 투자사의 가격 이하로 하기엔 문제가 되었고, 정사장은 그런 계약서 핑계만 대고 있고. 몸무림쳐 보았자 난 일개 종업원일뿐. 갑과 을은 이미 뒤바뀐 상황인걸. 

리얼미디어는 이미 전년도에 IPO 시도하다 떨어진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날 뽑은 것이었지만. 실제 내부에 들어가서 본 회사실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밑에 여직원 세명을 데리고 내부통제제도를 정비하고, 우리사주조합도 만들고 하면서 IPO(기업공개) 준비를 서서히 해 나갔다. 

그 당시 리얼미디어는 나스미디어에 이어 인터넷 광고 관련 2위 미디어렙사 였다. 그런데, 네이버 및 다음 등의 매체사들의 매체파워가 커짐에 따라 그 마진 구조가 점점 나빠져만 갔다. 그래서 마진 구조가 더 나빠지기 전에 IPO를 서둘러야 했다. 우선 실적이 상승 추세를 타야 하기에 IPO 전년도 실적을 밀고 땡기고 해서 살짝 매만졌다.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나 개발비 늘리기다. IT 및 서비스 기업은 R&D 비용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영업이익을 높히기 위해서는 R&D 비용을 자산화하여 무형자산(개발비)으로 쌓아두는 방법이 제일 손쉽다. 회계감사는 개발비 관련 세부내역 명세를 잘 만들어 놓으면 된다. 그리고, 그 당시엔 IPO를 하기 위해 지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되던 때였다. 

직접 실무로 IPO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벤처캐피탈로 다시 돌아와서도 투자기업의 IPO에 좀 더 적극적으로 컨설팅을 할 수 있었고, 어떻게 회사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얘기해 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2003년 여름 IPO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두번 연속이다. 이유는 매출 성장이 검증이 안되는 업종이고 마진율도 나빠져만 간다는 것이다. 일견 일리는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2003년 2천억 수준 하던 인터넷 광고 시장이 2013년은 2조가 넘는 규모로 성장했으니깐. 그런 거대 트렌드도 모르고 심사를 하니… 

IPO에 대한 불평은 그만 두겠다. 그렇지만, IPO 실패는 해외 M&A 시도로 전환되었고 그래도 주주들은 성공적으로 Exit 하였다. 그럼 난 어떻게 되었냐구? 정사장은 벤처캐피탈을 제외한 주주들로 부터 총 지분의 1%을 무상 증여 받아서(자사주로 무상 매입) 그걸 우리사주조합에 일정 비율대로 배분해 주었다. 정사장 본인은 아마도 0.2% 정도 무상 증여 했겠지. 그렇게 자사주로 무상 매입한 지분 1%를 우리사주조합원들에게 3년 근무 조건으로 나눠주었다. 나도 쥐꼬리 만큼 받았지. 그렇지만 난 1년 반만 근무하고 다시 벤처캐피탈로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지분은 다시 우리사주 조합에 던져주고. 

그런 정사장이 지난 주에 투자받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사실 스타트업에서 창업자(혹은 공동 창업자)와 회사 성장에서 필요한 인력 영입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지분을 나눠주면 쉽게 될 것 같지만 이미 고가에 들어온 투자자가 있으면 결코 낮은 가격으로 지분을 나눠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그렇게 지분을 받은 임직원이 퇴사하게 될 경우엔 또 어떻게 하겠는가? 스타트업의 사정 상 높은 연봉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지분이든 스탁옵션이든 급여 이외에 인센티브 방안을 고안하게 되는 거지만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법은 스탁옵션이다. 스탁옵션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주로 임원)에게 집중적으로 보상해주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일부 기업에서는 전직원들을 대상으로 스탁옵션을 남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특유의 평등주의가 바탕이 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탁옵션은 모든 임직원들에게 뿌려 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에게는 다른 인센티브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사주조합에 대주주가 자사주 형식으로 기부하여 그걸 배분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세무적으로도 문제 없고 장기적인 인센티브 플랜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인센티브는 궁극적으로는 회사가 잘 성장하여 IPO와 M&A를 통해 현금화할 가능성이 높을 때 진정 의미있게 다가온다. 가장 큰 인센티브는 역시나 스타트업의 성장과 자신이 그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 이겠지만 말이다.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회 보기 

  1. 연재를 시작하며
  2.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3. 벤처캐피탈 입문
  4. 미뤄진 인생계획
  5. 영화투자의 시작
  6. 벤처투자의 기초
  7. 닷컴 그 늪에 빠지다.
  8.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9. 벤처캐피탈과 사주

1997년 KTB 네트워크에서 벤처캐피탈에 입문한 후 현재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를 설립 및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을 위한 고품격 투자상담 토크쇼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교육에 관심 많아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쫄지마! 창업스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그 동안 플래텀에 연재한 글과 새로운 창업이야기를 담은 ‘쫄지 말고 창업(이콘출판)’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 창업, 스타트업, 기업가정신 등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론 그쪽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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