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4.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004년 3월부터 시작된 M&A 인생은 2007년 9월에서야 끝이 났다. 그 기간동안 코스닥 상장사인 보이스웨어를 인수하였고, 인수 후 음성인식기술 사업부문을 물적분할 하였고, 그 분할한 사업부문을 경영진을 파견하여 정상화 시켰고, 그 정상화된 사업부문을 광학렌즈로 유명한 일본 Pentax에 매각했다. 음성인식기술 사업부문 물적분할로 남은 Shell(껍데기)은 젝스키스, 핑클, 카라 소속사로 유명한 DSP와 디지털음원 사업을 하던 미디어래보러토리를 인수해서 붙였다. 한마디로 뒷문상장이었다. 부족한 자금은 해외로부터 유치하여 메꾸었다. 불과 보이스웨어 인수후 1년 이내에 다 이루어진 일이다.
그것 만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어렵게 금감원 승인까지 받으며 인수한 Shell을 당연히 몇번 더 이용해 먹어야 하는 법. 미싱도로시, 열음엔터테인먼트, 블루드래곤, 펄엔터테인먼트 등 다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을 추가로 인수하거나 합병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띠었다 붙였다 하다보니 Shell도 거의 걸레(?)가 되었다. 그러던 2007년 7월 어느날, 문성준 대표가 부른다.
“이제까지 보이스웨어 인수해서 내가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 한번 계산해 보세요”
“넵. 거의 xxx억원 들어 갔는데요”
“알겠습니다. 이제 M&A도 지겨운데 팔아야 될까봐요”
“아, 넵. 매수자는 있습니까?”
“인수하겠다는 데가 나타났긴 한데…”
그래서, 바로 난 매각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매각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나도 내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대표가 다시 부른다.
“이부장, 이제 M&A도 다 끝나가는데 이거 매각하고 나면 어디 갈데 있나요?”
“뭐, 아직 정해진 곳은 없습니다”
“그럼, 내가 대주주로 있는 창투사 튜브인베스트먼트(현 HB인베스트먼트)나 IT 회사 알트론 중에 하나 고르세요. 내가 보내줄 수 있으니”
“…,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이젠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혹 맘 바뀌면 얘기하세요. 참! 고생했는데 인센티브 좀 주려고 하는데 금액이 좀 커서 세금부담 많을텐데 혹 절세할 방법 있음 알려주심 그렇게 처리해 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근데, 정석대로 보너스로 주십시오. 그게 속 편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얘기가 오가고 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휴대폰이 울린다. 전에 튜브인베스트먼트에서 같이 근무했던 곽회계사 전화다. 곽회계사는 마침 선릉역 부근을 걷다가 IDG의 한 파트너를 만났고 그 파트너가 사람을 구한다는 얘길 듣고 바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부장님, 혹 직장 옮길 생각 있으세요?”
“뭐, 여기도 다 마무리 되어 가고 해서요.. 좋은데라도 있나요?”
“IDG라는 외국계인데 한국에 새로 VC를 만드는데 VC 경력에 Finance 전공한 사람 찾는다고 하네요.”
“IDG? 첨들어보는 회사인데요.”
그렇게 난 길거리에서 캐스팅 되어 바로 그 IDG 파트너, 곽회계사와 함께 삼성역 부근 중식당 ‘중원’에서 만났다. 짬뽕을 먹으며 이것 저것 얘기 나누고 나서 바로 대표이사 면접 일자가 잡혔다. 그리고, 2007년 10월 1일자로 IDG에 합류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2008년 가을엔 리먼브라더스가 망했고 전 세계를 뒤 흔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판 문대표는 그 어려운 시절을 잘 피해갔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동물적 감각이다.
문성준 대표와의 이별은 어떻게 되었냐고? 문대표는 본인이 타던 법인차량인 체어맨 600(3300cc)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손에 쥔 게 4천만원. 일단 내가 타던 기아차는 내 동생에게 주었다. 그리고 난 체어맨을 몰았다. 작은 체구에 체어맨이라. 음하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받은 4천만원으로 미래에셋증권에 몰빵 질렀다. 그때 매입단가가 주당 80,000원. 그런데, IDG로 옮긴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주겠다던 인센티브는 오리무중. 6년 탔던 중고 체어맨 하나로 떼우려는 건가? 2006년엔 내가 관여한 M&A로 백억원 넘는 이익도 발생되었는데… 그래서, 문대표에게 공문을 하나 써서 내 서명을 넣어 스캔본(PDF)을 보냈다. 남자 답게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라고.
아마도 비가 오는 11월 중순 어느 날인 것으로 기억난다. 겉 봉투가 비에 젖은 서류가 퀵으로 배달되었다. 문대표가 보낸 것이다. 그 안에는 인센티브 지급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열어보니 욕 밖에 안나온다. 내 입이 더 더러워 지기 전에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그래야 나도 IDG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니. 그래서, 그 굴욕적인 금액에 서명해서 서류를 보냈더니 바로 다음 날 해당금액이 입금되었다.
화가 났다. 4년 동안 머슴처럼 10건이 넘는 M&A 발굴, 실사, 관리, 매각 등 뒤치닥거리 다 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 대가가 고작 이 정로라 생각하니 서글펐다. 이게 피고용인의 설움인가? 나의 유일한 위안은 그 당시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에 미쳐 있었던 한국의 주식시장 상황이었다. 한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일개 펀드에 점심시간 마다 줄을 서서 그 펀드를 사는 정도라니. 이건 꼭지 중에서도 꼭지였다. 미래에셋증권 주가를 보니 이미 두배가 뛰었다. 16만원. 난 주식을 다 팔았다. 그것도 시장가격으로. 우수수 주가가 조금 떨어지는게 보인다. 쾌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손에 원금의 두배에 해당하는 8천만원을 쥐었다. 바로 건너편 자동차 매장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와이프 선물로 차를 하나 뽑았다.
그렇게 나의 IDG Ventures Korea 생활은 시작되었다.
P.S.
내가 IDG로 간다고 했을 때 문대표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시절의 딸보 장군 얘기하면서 전쟁터 나가서 잘 싸우라며 사준 와인 ‘샤또 딸보(Chateau Talbot)’는 인상적이었다.
[divide]
-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