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5.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007년 첫 딸을 낳았다. 10월엔 IDG로 옮겼다. 11월엔 미래에셋 주식을 팔아 번 돈으로 와이프에게 차를 사줬다. 그리고, 그 해 태어난 딸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때 예전에 선배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모 금융회사 부회장으로 계신 분의 실화라고 하면서.
그 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중반, 아들이 어렸을 때 아들 이름으로 주식을 하나 사두었다고 한다. 한 20백만원 정도. 그 주식이 한국이동통신(현 SK 텔레콤) 이었다.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이 된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를 찾아와서 “저 장가가요” 하고 했단다. 그때, 아버지는 묵묵히 아들 이름으로 된 주식계좌를 건내주었다는군. 그때 시가가 30억원 되었다고 한다.
나도 내 딸에게 그런 멋진 선물을 주고 싶었다. 바로 한국투자증권 삼성역 지점으로 달려갔다. 딸 이름으로 주식계좌를 만들고 현금 15.5백만원을 송금했다. 왜 15.5백만원을 송금했냐고? 다들 알겠지만 미성년자에겐 15백만원(10년동안)까지가 현금 증여 면세금액이다. 오십만원을 더한 이유는 면세 한도금액을 넘겨 세금신고를 하기 위해서 였다. 세금신고를 하고 증빙을 남겨두면 나중에 세금추징 걱정도 없고 증여도 떳떳하고.
증여 및 송금처리가 다 되고 나서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가 고민되었다. 그래, 앞으로 사람들 돈도 많이 벌고 복지 수준도 높아지고 그러면 많이 놀러 다닐꺼니까 여행관련 주식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지른 종목이 바로 ‘하나투어’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하나투어’에게 직격탄 이었다. 이내 주식이 반토막이 나 버렸다.
2009년 4월 둘째 딸을 낳았다. 물론 와이프가 낳았지. 출생신고를 하자 마자 또 한국투자증권 삼성역 지점으로 달려갔다. 둘째에게는 내가 갖고 있던 (주)LG 주식 7백만원어치를 증여했다. 왜 주식으로 증여를 했냐고? 그건 그날 주식시장이 안좋아 LG 주가가 많이 빠져서 상대적으로 많은 주식을 딸에게 증여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 오너들이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이 주가가 폭락할 때 주식증여를 많이 하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겠지. 첫째 보다 절반 정도 금액으로 증여를 한 건 다 둘째로 태어난 복(?) 덕분이겠지. 사실 2009년 첫째의 평가액이 8백만원 정도여서 그 정도 수준에 맞춰서 둘째도 한 것이지만.
하여튼, 증여를 마무리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길게는 5년간 딸의 주식계좌를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 성과는 첫째 딸은 최초 투자원금을 약간 상회할 정도로 회복했다. 둘째 딸은 거의 60% 이상 평가익이 발생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의 주식투자는 배당을 많이 주는 지주회사 중심이었다. 지주회사들은 주로 자회사 실적으로 먹고 사는 회사이다 보니 주주들에게 배당도 후한 편이다. 난 그 배당받은 금액을 그 회사 주식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 터였다. 지금은 지주회사 주식을 다 팔고 모바일 게임회사에 올인하고 있다. 카카오, 라인이 뜨면서 딸들의 주식도 뜨고 있다.
내년이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간다. 그럼 난 그 애에게 본인 명의 주식계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용돈이나 세뱃돈 등이 생기면 그 계좌에 입금하도록 할 것이며, 주가가 올라가면 본인 돈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알려줄 것이다. 중학교에 가게되면 나와 상의해서 주식을 사고팔게 해줄 것이다. 어느 주식을 사면 좋을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너도 경제적으로도 독립해야 될 거라고 넌지시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주식계좌의 비밀번호와 도장을 주면서 집에서 내쫒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은 이 돈으로 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20년에 걸친 살아있는 경제/금융공부를 통해 딸도 많이 배울 것이다.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며, 돈관리는 어떻게 하며, 투자는 어떻게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돈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겠지. 물론 독립심도 많이 커지겠지.
가혹한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자식이 마마보이로 성장하여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더 가혹한 것이다. 한국 정서상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를 한번 봐라. 어디 대학가서도 부모에게 이렇게 의지하는 나라가 있는지. 난 2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게 손 벌리는 그런 나약한 자식으로 키우긴 싫다.
이런 금융교육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다. 이미 수천전 전부터 유태인들이 해오던 방식이다. 유태인들은 자녀가 돌을 맞으면 친척들이 다 모여 돈을 모아서 자녀 이름으로 주식이나 펀드에 넣어준다고 한다. 그것도 전혀 망할 것 같지 않은 코카콜라 같은 안전한 회사 주식 등에. 그리고 대학 갈 때 까지 자금운용도 하며 투자도 해보면서 경제관념을 익히고 대학 들어가서는 경제적, 정신적으로도 독립하고. 그렇게 자란 유태인들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음을 우린 잘 안다.
사실 20년에 걸친 자녀 금융교육법에는 재테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가치투자와 복리(Compound Interest) 효과이다.
워렌버핏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눈덩이의 비유를 들면서 설명한 바 있다. 눈덩이(Snow Ball)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두가지이다. 그것은 눈이 잘 뭉쳐질 수 있는 적절한 습기와 눈을 힘 안들이고 굴릴만한 충분히 긴 언덕이다. 습기가 없는 눈은 잘 뭉쳐지지 않는다. 즉, 눈이 약간 촉촉해질 때까지 종잣돈(Seed)을 만들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주식시장으로 얘기하면 외부충격으로 경제에 위기가 와서 일시적으로 주가가 모두 하락하는 시점까지 기다리란 말이다. 남들이 다 패닉에 빠져 있을 때가 바로 주식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이란 얘기다. 그때 체리를 따듯이(Cherry Picking) 가치주들을 바구니에 담으면 된다. 그런 다음 아주 긴 언덕에서 그 눈덩이를 굴리면 된다. 짧은 언덕에서 굴리면 단단하지 않은 눈덩이가 바로 바닥에 떨어져서 깨질 수 가 있다. 그런데, 그 눈덩이를 아주 완만하고 긴 언덕에서 서서히 굴리면 처음엔 눈이 바로 커지지도 않고 커지는 속도도 더디나, 조금 지나면 가속력도 생기도 눈덩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것이 바로 복리효과이다. 복리효과는 이자에 이자가 붙는 것을 말하는데, 주식으로 말하자면 주식에 배당이 생기고 그 배당금으로 그 주식을 또 사고 그러면 더 큰 배당금이 생기고 그리고 또 재투자하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그 주식은 처음에 생각한 규모보다 훨씬 더 크게 된다는 얘기이다.
통상적으로 복리효과는 7년 정도 지나면 제법 속도를 내면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본인구좌로 주식거래를 할 경우에는 이런 복리효과를 누릴 정도로 오랜기간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자녀를 통해 HTS 거래 없이 유선상으로만 거래를 할 경우에는 가치주 위주의 장기간 투자가 비교적 용이하며 이런 장기투자에 맛을 들이면 그 묘한 매력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스타트업의 경영에서도 이런 워랜버핏의 눈덩이 비유가 적용된다. 눈덩이에 적절한 습기가 있어야 처음에 잘 뭉쳐지는 것처럼 스타트업 초기팀의 구성도 우수 인력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인력(A급 인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10명에서 15명 정도까지 초기팀 인력의 DNA가 스타트업 성공의 DNA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초기팀 구성은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적절한 습기를 머금은 초기팀이 구성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굴릴만한 완만한 긴 언덕, 즉 큰 시장을 찾아야 한다. 그런 큰 시장(긴 언덕)에서 사업을 해야 크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짧은 언덕을 찾아서 눈덩이가 충분이 뭉쳐지지 않았는데도 급하게 굴리다 눈덩이를 깨뜨리는 사례를 많이 봐 왔다. 모바일 게임들이 하루아침에 대박 쳐서 일확천금을 얻는 것을 많이 봐와서 일까? 그렇지만, 페이스북, 애니팡, 앵그리버드, 카카오톡 등의 성공도 다 우수한 팀을 먼저 이루고 긴 언덕에서 본격적인 복리효과(J Curve)를 누리기 까지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다들 망각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적절한 습기를 머금은 팀을 이뤄 충분히 큰 시장에서 복리효과가 나타날 때 까지 눈덩이를 굴릴 수 있는 배짱과 의지가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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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