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8.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 어떻게 살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관한 책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어떻게 사는 것 보다 우선 고민해봐야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왜 사느냐’ 이다.
강원도 삼척에서 올라와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난 참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이였다. 말주변도 없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과 친구들이 다 나보다 위대해 보였다. 1학년 1학기 때 받은 학사경고는 나를 더욱 열등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놀았고 그럴수록 더 책에 빠져 들었다.
사실 우울증에 시달렸다기 보다는 염세주의에 빠져 있었다 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있었던 사고로 난 머리를 다쳤고 그것이 나를 더 염세주의에 빠지게 만든 것 같다. 물론 그 시절에 읽었던 까뮈의 ‘이방인’, 헤르만헷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이 나의 혼돈을 가중시켰지만.
염세주의에 빠진 이유는 명확했다. 왜 살아야 하는 지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살아도 기쁨이 없는 이 세상을 왜 살아야 하는 지가 그 시절 나에게 있어 큰 짐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래서 책을 더 읽고 더 고민하고 더 글을 쓰며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난 내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만 했다. 대학시절의 방황은 결국 나를 찾기 위한 고된 과정이었다. 그 방황 중에 학사경고도 대학 부적응도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여행을 참 많이 떠난 것 같다.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말이다.
대학 1, 2학년 시절 읽었던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원일의 ‘마음의 감옥’,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과 ‘사람의 아들’은 나의 염세주의를 더 심화시켰다. 특히, 대학 2학년 여름방학 중 서강대 구내식당(C관)에서 점심 먹으며 단숨에 다 읽어버린 강석경의 ‘숲속의 방’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들 더 나만의 방 안에 가두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책을 다 읽고 그 충격으로 우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 소낙비를 다 맞으며 신촌 자취방으로 걸어 왔으니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방황의 가장 저점이었던 것 같다.
실존에 관한 책들은 비교적 어두운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나를 부정하고 나의 모든 것을 까발려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하여튼 자기부정과 자기 파헤치기 과정을 난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하였다. 극도로 나에 대해, 실존에 대해 방황하고 고민하다 보니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교 3학년에 복학할 때 쯤 뭔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것은 흡사 불교에서 화두 정진을 오래하여 ‘夢中一如(몽중일여)-꿈속에서도 화두가 일정하고 잡히는 상태’와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때부터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의 행동이나 말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스타트업 얘기를 쓰면서 왜 오늘 이런 주제를 다루었는지 의아해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벤처캐피탈에 있으면서 많은 창업자들을 만나보았지만 그 중에는 왜 사업을 하는 지 모르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왜 사업을 하는 지 보다는 무슨 사업을 하는 지를 더 강조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근데 진정 중요한 것은 ‘무슨 사업’ 보다는 ‘왜 하느냐’ 이다. ‘왜 하느냐’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창업자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이 회사의 비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인생을 왜 사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성공할 수 있겠는가?
스타트업 관련 칼럼이나 책들을 보면 창조혁신의 성공사례로 위대한 창업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많이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의 대부분은 스티브잡스의 천재적인 창의성과 유저 인터페이스만 강조하는 측면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스티브 잡스 만큼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 창업자가 또 있었을까?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더라도 잡스의 대학시절 방황과 선불교 심취 그리고 히피문화가 애플 창업 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우기 리드대학 중퇴와 18개월의 방황 끝에 그가 일하러 들어간 게임회사 아타리(Atari)도 어찌 보면 인도로의 종교순례를 떠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그는 ‘그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1974년 그는 아타리를 떠나 7개월간 인도 순례여행을 떠난다. 자아를 찾기 위해서, 어떻게 살지 고민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잡스는 지속적으로 명상을 하고 禪(선)을 공부하며 자아를 찾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는 인도 순례의 경험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인도에 갔을 때보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훨씬 더 커다란 문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Intellect)을 사용하지 않지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Intuition)을 사용합니다. (중략)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구에서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인간의 본연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며 서구 문명이 이루어 낸 훌륭한 성취이기도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터득했는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성 못지않게 가치가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직관과 경험적 지혜의 힘입니다. 인도에서 7개월을 보내고 돌아온 후 저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욱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 중에서(92~93쪽) 인용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잡스는 자신감을 가지고 애플을 경영할 수 있었고, 직관에 기반한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구현한 단순한 디자인의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고, 배워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스스로 학습하며 사용할 수 있는 유저 인터페이스(UI/UX)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픽사(Pixar)의 ‘토이 스토리’, 애플의 맥킨토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
잡스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바로 내부의 소리(Why)에 귀 기울여 답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How) 구현해 낼지 고민하고, 그래서 그 결과물로 어떤 것(What)들이 나왔다는 말이다. 이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 왜 창업을 하는가?
인생도, 사업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왜 사는지, 왜 사업을 하는 지를 먼저 고민해야지 그 고민 전에 ‘난 돈을 많이 벌 거야, 난 위대한 제품/서비스를 만들 거야’ 같이 목적(What)에 얽매이면 크게 성공할 수 없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최근 Simon Sinek(Start With Why: How Great Leaders Inspire Everyone to Take Action의 저자)의 TED 강연(SEPT 2009)을 보고 좀 더 체계화 시킬 수 있었다.
그는 애플의 마케팅 방식을 설명하면서 먼저 타 컴퓨터 회사의 마케팅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훌륭한 컴퓨터를 만듭니다. 그것들은 매우 아름다운 디자인에, 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구입하고 싶으신가? 애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달랐다고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 우리는 기존의 현상에 도전하고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기존의 현상에 도전하는 우리의 방식은 제품을 아름답게 디자인하여, 간단히 사용할 수 있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금 훌륭한 컴퓨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구입하고 싶으신가? 이 두 메시지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 애플의 접근 방식은 Why, How, What의 과정을 거친다. 반면 타 회사는 What, How, Why의 과정을 거친다. 정보 전달의 순서만 바꾸어 놓았을 뿐인데 애플은 제품(What)이 아니라 신념(Why)을 구입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즉, ‘내가 왜 이것을 하지, 어떻게 할까, 아 맞아 저 컴퓨터가 있으면 되겠네’ 라는 인간 본연의 의사결정구조와 애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일치하기 때문에 애플의 접근 방식이 더 호소력 있게 들리는 것이다. 반면, What, How, Why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우리는 단지 업무를 하기 위한 대상으로 컴퓨터를 구매하는 것에 그치게 된다.
최근들어 창업과 스타트업 투자활성화 대책들이 창조경제 정책으로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창업자 본인이 무슨 내적동인(Why) 때문에 사업을 하는지 먼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업도 서비스도 왜 하는지 먼저 고민한 다음에 어떻게 만들어 가서 무엇을 할지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마지막으로 예비 창업자들은 창업 전에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먼저 해보고 느끼는 바가 있으면, 그 다음에 왜 창업을 하는 지 또 고민을 해보고 답을 얻은 후에 창업전선에 뛰어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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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