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1.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어제 2013년 두번째 ‘쫄지마! 창업스쿨‘ 2주차 강의를 진행하고 집에 늦게 들어갔더니 와이프가 딸래미들이랑 저녁 먹으면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와이프는 얼굴에 약간 트러블이 있어서 현재 피부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얼굴 한쪽이 붉게 보인다. 그런데, 일곱살배기 첫째 딸이 도발한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 얼굴 좀 치워 줄래?”
“왜에?”
“토 나올 것 같아서.”
“(염소 소리) 매에에~ 매에에~”
이 얘길 듣고 엄청 웃었다. 나 닮아서 유머코드(?)가 뛰어난 건가? 아님 지 어미를 무시하는 건가? 하여튼 재밌었다. 지난 번 글을 어느 파워 트위터리안 분이 리트윗 해준 이후로 내 글에 대한 트래픽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기분이 좋지만 그것 보다는 많은 분들이 본다고 생각이 드니 더 움츠러드는 것 같다. 아무도 안 본 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 멋대로 써내려 갔는데. 이럴 때 첫째 딸이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려줘야 되는데. “아빠! 아무도 안보거든. 저리 비켜”
사실 ‘쫄지마! 창업스쿨’은 ‘쫄지말고 투자하라’에 이은 ‘쫄지마’ 시리즈의 두번째 판이다. 쫄투를 통해서 많은 창업자들을 만났고, 그 사업이 좋든 싫든 사업계획서를 면밀히 검토하였고 1시간 가까이 방송을 통해서 그들의 진지한 창업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쫄투를 진행해온 2012년 12월 초, 최종 박사논문 종심까지 마치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허해지는 거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난 집중할 수 있는 류의 인간이기에. 그런 고민을 하던 찰라, 후배들이 창업스쿨을 꾸리고 운영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 지금까진 열심히 공부를 해왔는데 이젠 배운 것을 사회에 베풀어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 이름으로 창업스쿨을 열면 얼마나 모일까 걱정이 되긴 했다. 그래서 우선 먼저 시장반응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린스타트업에서 말하는 최소존속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 개념도 있는데 내가 하려는 창업스쿨에서도 MVP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서울대, 연대, 카이스트에서 주로 특강 주제로 삼았던 ‘벤처캐피탈과 기업가정신’이란 주제로 한 강의를 올려서 모객 수준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어느 플랫폼에 올릴까 고민하다 이내 쫄투에도 출연했던 인연을 기억하며 에브리클래스 김혜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저녁 약속이 많았다. 유독 한 날자가 스케줄이 비어 있었다. 그렇게 고른 날이 12월 19일(수) 오후 7시. 에브리클래스에 올릴 강의 설명자료를 만들고 2주 전에 모객을 개시하였다. 모객수는 처음부터 너무 욕심부리면 안될 것 같아 20명으로 정했다. 수강료는 1만원. 장소는 토즈 강남점. 내 이름 걸고 하는 첫 유료강의의 시작이다. 떨렸다.
생각보다 모객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적극적으로 알렸다. 한 두명이 신청을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야 했다. 첫 산출물이 실패로 끝나면 더 이상 창업스쿨을 지속할 수 없기에. 그래서, 모교인 서강대 창업동아리와 친분 있었던 연세대 창업지원단의 박소영 팀장께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바터(물물교환)는 아니지만 예전 연세대 창업지원단 소속 스타트업 4개사 쫄투 출연 인연도 있고 해서 박팀장님께서 적극 도와주었다. 하여튼, 첫 창업스쿨 데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만, 쫄투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홍보를 하지 않았다. 너무 속 보일까봐.
어쨌든 목표했던 스무명은 채웠다. 그리고 대망의 19일. 아침에 일어 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뿔싸, 대통령 선거일이다. 12월 중 유일하게 약속이 없어서 창업스쿨 테스트 강의날로 정했는데 하필 그날이 선거로 인한 공휴일이다. 일단 와이프와 함께 투표는 했다. 오후 세시 쯤인가 머니투데이에서 연락이 온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라는 바’ 라는 제목으로 밤 12시까지 기고문을 써 달란다. 내가 서강대 출신이라서 고른 건가? 모르지. 하여튼 머리가 복잡해진다. 가뜩이나 박빙인 이번 대선에서 선거방송이 한창인 오후 7시에 창업관련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언론사에서는 야당, 여당 다 당선될 가능성을 두고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라는 글을 준비한다고 한다.)
선거방송도 시작하기 전에 집을 나섰다. 토즈 강남점. 미리 가서 발표 준비를 했다. 6시 50분이 넘어간다. 사람들이 한 두명 들어오기 시작한다.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열 다섯 명이 넘는 인원이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19명이 수업에 참가한 것 같다. 에브리클래스 수수료, 토즈 장소대여료 및 장비대여료를 제외하고 나서 4만원 정도가 내 손에 쥐어졌다. 뿌듯했다. 물론 그 돈은 내 첫강의에 참여해 준 수강생들과의 호프 뒷풀이에 다 썼지만.
가능성을 본 것이다. 단 한 과목이지만 난 린스타트업에서 배운 대로 최소존속제품(MVP)을 만들었고, 선거날이라는 장애물을 넘어 초기에 목표했던 20명에 근접한 고객을 모았다. 자신감이 붙었다. 판을 키워보기로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창업스쿨의 공식 명칭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한 강의만 테스트로 올렸을 뿐이었거든.
명칭을 정해야만 했다. 당연 ‘쫄지말고 투자하라’와 일관성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한 이름이 ‘쫄지마! 창업스쿨‘이다. 물론 이런 쫄지마 시리즈는 현재 연재하고 있는 ‘쫄지마! 인생’으로 계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리고, 앞으로 다른 ‘쫄지마’ 시리즈는 뭐가 또 나올지 모르지만.
자신감이 붙은 나는 다음 단계를 기획했다. 난 투자쪽의 전문가고 창업경험은 약하니 성공한 창업자와 힘을 합하면 제대로된 창업스쿨 커리큘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접촉한 분이 프라이머의 이택경 대표님이다. 창업자 입장의 관련 5주 강의와 투자자 입장의 관련 5주 강의를 꾸며서 총 10주 코스로 커리큘럼을 임의적으로 꾸며 보냈는데 이택경대표님이 흔쾌히 함께해 주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방학 때 진행하는 프리미어의 프로그램(엔턴십)이 있어 당장 시작하기는 어려우니 2월 중순부터 시작하자고 하신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강사를 좀 더 확대해서 전문성을 강화했으면 하고 말씀하셔서 린스타트업 강의를 추가하기로 했다.
2013년 2월 중순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난 한번 더 나의 상품력을 테스트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투자관련 5주 커리큘럼을 1월 초 에브리클래스 플랫폼에 올려 보았다.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 놓기 전에 다시 한번 OBT를 해 본 것이다. 결과는 평균 35명 이상의 수강생이 참가하였다. 이땐 강의 당(2시간) 수강료를 2만원으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다. 그때 느꼈다. 이런 창업수업에 다들 목 말라 있었다는 걸.
그리고, 프라미어와 쫄투가 함께하는 ‘쫄지마! 창업스쿨’이 2월 중순 총 10주 코스로 그랜드 오픈하였다. 평균 50명의 수강생과 총 5명의 강사가 참여하였고 4월까지 잘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7월 15일부터 시즌1의 강의를 좀더 압축시켜 8주코스로 ‘쫄지마! 창업스쿨’ 시즌2를 오픈하였다. 현재까지 2주차 강의가 완료되었고 평균 80명 수준의 수강생들이 창업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창업스쿨 제자들 중엔 실제 창업을 해서 제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도 있고, 쫄투에도 출연해서 사업을 확장시키는 친구도 있고, 첫번째 들은 수업이 너무 좋다고 이번 시즌2에 다시 재수강 하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그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서 창업을 포기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브라보. 어설픈 사람이 등 뗘밀려 창업하는 것은 자신의 돈을 사회에 재분배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창업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내 철학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뿌듯했고, 더 책임감도 느껴진다.
내가 오늘 이런 얘기를 두서 없이 얘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난 이것에 내 인생의 전부를 걸지도 않았고 이걸로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 난 ‘쫄지마! 창업스쿨’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였고, 최소존속제품(MVP)를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테스트 하였고, 그 첫 작품이 행여 실패할까봐 내가 가진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사실 스타트업의 경우 초기 목표를 낮게 잡아 반드시 성공을 하여 조직원 모두 작은 성공의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 사업 지속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MVP 테스트 후에는 한번 더 본격적인 시장진입에 앞서 나만의 테스트를 한번 더 하면서 나의 시장성을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더 큰 시장, 더 큰 가치를 위해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닌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동반자(프라이머 이택경 대표님)를 만나 협력하게 되었고, 그리고 서비스를 더 고도화하게 되어 시즌2까지 연속성을 갖는 브랜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물며 자신의 전부를 걸고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 철저히 이런 과정을 이행해야 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수억원을 써가며 1년 2년 째 골방에서 완성된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노력해 봤자 성공 확률이 높은 건 절대 아니다.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왔을 즈음엔 시장이 아예 바뀌어 있던가 아님 원래부터 시장의 수요와 취향을 무시한 제품을 만들 가능성이 크던가. 아무래도 아주 작은 서비스라도 먼저 내 놓아 시장의 반응을 보며 바꿔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게 바로 린스타트업 정신인 것이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모든 스타트업이 “어머 이 산이 아닌가봐. 야 저 산으로 가자.”와 같은 오류를 더 이상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그러기엔 스타트업은 너무 여리다.
[divide]
-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 어떻게 살 것인가?
- 벤처캐피탈과 겸손
-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