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0.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011년 7월말, 한참 무더울 때 중국 최대 게임쇼 차이나조이에 포트폴리오 회사와 함께 출장을 왔다. 그리고, 7월 28일 저녁, 중국 상해 페니슐러 호텔을 찾았다. 1년 전 홍역으로 인해서 그 호텔에 묵었으면서도 황포강 건너 푸동 야경을 즐기지 못했던 한을 풀려고 다시 그 호텔을 찾은 것이다. 이번엔 네오플럭스 범준이와 함께. 황포강을 떠다니는 화려한 불빛의 유람선과 푸동의 스카이라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와인을 한잔 들이킨다. 범준이가 말을 꺼낸다.
“형님, 어제 텐센트 파티 왜 안오셨어요?”
“어 그거… 초대받지 못했다”
“아니 왜요? 캡스톤하고 함께 투자도 많이 하셨잖아요?”
“글쎄… 그게 .. 좀…”
“근데 넌 초대 받았니?”
“뭐 그런거 있어요. 그냥 동방명주 빌딩으로 찾아갔더니 되던데요”
“그래? 하하. 너가 나보다 낫네.”
그렇게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말미에 설사병이 생겨 돌아오는 공항에서 거의 초죽음이 되었지만 이번엔 격리되지 않고 무사히 상해를 탈출할 수 있었다. 상해는 나와 뭔가 잘 맞지 않는 도시인 게 분명하다.
그리고, 8월 11일 밤.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상해에서의 텐센트 파티가 문득 떠올랐다. 캔맥주가 하나 더 추가된다. 뭔가 꿈틀된다. 캔 하나가 더 까진다. 노트북이 꺼내지고, 어느 순간에 음주 메일이 하나 보내진다. 새벽 한시 십삼분.
보내고 나서 보니 얼굴이 화끈 거린다. 음주메일은 보내는게 아닌 것 같다. 보낸 메일을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얼마 안 있으면 캡스톤 송대표님이랑 골프약속도 잡혀있는데 큰일이다.
보낸 사람: Matthew Lee <****@idgvk.com>
날짜: 2011년 8월 12일 오전 01시 13분 32초 KST
받는 사람: ****@cspartners.co.kr
제목: China Joy 관련
송은강 대표님,
IDG 이희우 입니다.
지난 7월말에 상해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저도 그때 상해를 다녀왔는데 상해에서 인사 못 드려 죄송합니다.
IDG와 텐센트 공동 투자기업인 A사, B사와 함께 갔는 데도 불구하고 Tencent 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해
아쉬움은 있었지만, 무대뽀로 파티에 다녀와서 파티 얘기를 들려준 네오플럭스의 이범준을 보면서 위로도 받기도 했습니다.
동방명주를 바라보며 와이탄에서 맥주를 드리키던 심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포트폴리오 기업들은 동방명주에서, 저는 와이탄에서…
내년 2012년 China Joy에서는 텐센트 파티의 말석이라도 참석할 수 있게 허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이희우 올림
며칠 지나니 송대표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미리 알았다면 도움 드릴 수 있었는데 하시면서 다음엔 꼭 가능하도록 해주신다는 답장이었다. 이메일을 읽으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2011년 8월 25일, 진천 아트밸리. 벤처캐피탈 친목 골프대회가 있었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빗속을 뚫고 운전해가는 그 길이 그 날은 유난히 힘들었다. 조편성을 했는데 송대표님과 같은 조이다. 티업을 하고 세네번째 홀을 지날 쯤에 내가 입을 열었다.
“송대표님, 지난 번에 음주 메일 보내서 너무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담엔 그런 일 있음 저에게 미리 말씀해주세요”
“거듭 죄송합니다. 꾸벅”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죄송한 마음 금치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바일 투자에 관심있는 벤처캐피탈들의 모임 회의가 도곡동 사리원에서 열렸다. 2011년 10월 12일. 바로 그 날이다. 점심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 송대표님이 잠깐 얘기 좀 더하자고 하신다.
“이대표님, 혹시 나꼼수 들으시나요?”
“나꼼수요? 듣고는 있는데요”
“그럼, VC 판 나꼼수 만들어 보는 거 어떠세요?”
“어떤 식으로요?”
“스타트업 초대해서 투자 심사하듯 토크쇼 형식으로 해도 될 듯 한데”
“재밌겠는데요. 한번 해보시죠.”
그렇게 시작했다. 처음의 컨셉은 ‘공격과 방어’로 하기로 했다. 즉, 송대표님이 섭외한 스타트업은 내가 공격하고 송대표님은 회사를 도와 방어하고 내가 섭외한 스타트업은 그 반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야 신랄하게 그 회사에 대해 파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나중에는 내가 약간 힐링모드로 변질(?)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송대표님이 나와 함께 팟캐스트 하자고 했는지 문득 궁금했다. 치기 어린 투정을 부린 나를 쫄투 진행자로 초대해 주신 그 이유가. 그래서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송대표님 왈, 지난 번 케이블에서 했던 ‘수퍼앱 코리아’ 심사하는 것을 봤는데 이런 것 잘 할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한다. 아, 그때 생각 난다. 케이블로 방송되는 애플리케이션 경진대회에 심사 나갔는데, 카메라에 한번 더 잡혀보려고 수염도 기르고 멘트도 독하게 날렸던 적이 있었지. 물론 그 컨셉 살려 쫄투 찍으면서 계속 수염을 기르게 되었지만 말이다.
2011년 11월 1일, 씽크리얼즈 김재현 대표님을 시작으로 쫄투(쫄지말고 투자하라)는 막을 올렸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밤(9시) 촬영은 19개월간 82회에 걸쳐 지속되었다. 출연기업 중 23개사가 투자를 유치하였고, 5개사가 쫄투 출연 이후 Exit에 성공하였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쫄투를 통하여 너무나 훌륭한 스타트업 창업자분들을 만나 뵙게 되었고 나 또한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었다.
“송대표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쫄투 시즌2 계속 가셔야죠?”
P.S.
쫄투는 송은강, 이희우의 진행과 소리웹 이용진의 제작과 카울리 홍준, 이장(양석원)의 기획/섭외로 시작되었다.
[divide]
-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 어떻게 살 것인가?
- 벤처캐피탈과 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