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멘토링이란 용어는 아직도 부담스럽다. 멘토링을 요청해 올 때마다 난 항상 “함께 배우는 것이지 내가 가르칠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느끼기를 바라며 추천하는 책이 바로 랜디 코미사의 ‘승려와 수수께끼’이다. 난 이 책을 읽고 나서 함께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창업자의 시각과 투자자의 시각은 차이가 있는 법, 그 차이를 느끼는 것도 재미 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많이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이런 식의 멘토링 이라면 난 항상 흔쾌히 수락한다.
‘멘토’라는 단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Odyssey)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그의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맡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년 동안 멘토는 왕자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이후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2013, 박문각)
올라웍스의 창업자 류중희는 ‘쫄지마! 창업스쿨’ 제1주차 강연에서 스타트업에 있어 멘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멘토로는 내가 하는 사업과 유사한 사업을 시작부터 끝(Exit)까지 한 사이클을 돌아본 사람이 적당하며, 그런 멘토는 스타트업이 잘못된 길을 가던가 큰 어려움에 봉착할 때 먼저 그 길을 걸어 본 선배로써(류대표는 타임머신 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르는 길을 갈 때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듯 불확실성이 많은 사업의 길을 갈 때 멘토를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란 얘기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류중희대표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아주 훌륭한 멘토 중 한 명이다. 텍스트만 조금 보완하면 말이다. (아마도 류대표가 이걸 읽으면 무지 웃지 않을까?)
류대표에 비하면 난 창업경험도 없고(스타트업 CFO 경험은 조금 있긴 하다) 더군다나 성공경험도 없다. 사업이란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데 내비게이션 역할을 제대로 해주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 많은 이들이 나에게 멘토가 되어주길 요청한다. 난 나 자신을 잘 알기에 멘토가 되기 보단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게 속도 편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책을 보려고, 책을 통해 더 다양한 간접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단점을 가진 나에게 스타트업 토크쇼 ‘쫄투’는 다양한 창업자들을 만나며 다양한 그들의 시각과 창업 스토리를 통해 큰 가르침을 허락해 준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어떤 이는 벤처캐피탈을 ‘Pattern Recognizer’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벤처캐피탈 정의 이기도 하다. 벤처캐피탈은 과거의 투자 성공 및 기업 성장지원 경험을 그와 유사한 원대한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 창업자(Visionary)를 통해 그 성공패턴을 찍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존의 투자경험과 ‘쫄투’를 통한 다양한 창업자들의 이야기들은 내 머리 속에 각 사업별/성장단계별로 구분되어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고, 난 필요할 때마다 각 기업별 상황에 맞는 약간은 정형화된 성공패턴을 꺼내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쫄투’에서 만난 많은 창업자 중에서 자연스럽게 멘토링 비슷한(?) 것을 하게 된 관계가 있는데 바로 국내 1위 모바일 중고거래 ‘번개장터’의 장영석 이사이다. 처음 만남 자체가 ‘쫄투’ 촬영장에서 였다. 처음 나왔을 때 어리버리 하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앱 다운로드의 몇 %가 회원으로 전환되죠?”
“(사업계획서를 뒤적거리더니) 제가 아직 수치를…”
“그럼, 주간 물품 등록수와 거래비율은요?”
“(다시 사업계획서를 들추면서) 그것도…”
“뭐 데이타를 하나도 숙지 안하고 나왔어요? 그렇게 해서 투자 받을 수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를 또 준다면 그땐 철저히 준비해서 나오겠습니다”
“…”
그 때 내가 다소 거칠게 말했던 것 같다. 사실 장영석 이사는 KT에서 번개장터로 온지 한 달도 안되었을 무렵 등 떠밀려 ‘쫄투’ 두번 째 출연자로 나온 터였다. 초기 ‘쫄투’ 컨셉을 잡고 있던 과정이라 희생양이 된 측면도 있다. 초창기 ‘쫄투’ 시청자들 사이에서 VCNC(비트윈) 박재욱 대표처럼 말하면 투자 받고 번개장터 장영석 이사처럼 얘기하면 투자 받지 못한다는 얘기도 떠돌았었다. 그런데, 그런 쪽팔림을 장이사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한순간의 쪽팔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장이사는 그것을 곱씹으며 회사의 모든 실적들을 데이타화하고 언제 어디에서든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두 달 정도 시간이 흘러 2012년 1월 초에 다시 만났을 땐 그는 달라져 있었다. 회사 관련 수치를 묻는 질문에 즉석에서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눌러가며 회사의 다양한 수치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얘 꽤 괜찮은 놈인데’라는 생각과 다시 투자를 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투자검토를 시작하였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투자하지 못하고 번개장터에 까이게 되었다. 까였지만 그리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번개장터와는 그 후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더 큰 도약을 위한 그들의 멋진 투자유치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주말 장영석 이사로부터 ‘승려와 수수께기, 그리고 번개장터’란 제목의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장이사는 역시 멋진 놈이다. 부끄럽지만 한번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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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와 수수께끼, 그리고 번개장터
“계란을 10미터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깨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책은 수수께끼에서 시작한다. 총 299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주요 내용은 벤처투자자인 주인공이 온라인 장례식 사업 모델로 창업을 준비하는 ‘레니’와 만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 ‘레니’의 모습에서 난 과거의 나와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벤처투자자 ‘IDG 이희우 대표’님이다. ‘이희우’ 대표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회상하면, 잠깐의 인사와 함께 나와 장원귀(번개장터 대표)는 마치 누군가에게 쫒기듯 허겁지겁 사업 설명을 시작한다.
장원귀: 현재 중고나라는 많은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이기 때문에 트래픽 대비 사업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구요. 그 결과 개인간거래(C2C) 시장은 아직 제대로된 메인 플레이어가 없습니다.
이희우: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사업화에 성공 할 수 있나요? 만약, 네이버가 ‘중고나라’ 어플 만들면 끝 아닌가요?
나(장영석): 네이버는 브랜드 리스크 때문에 안할거구요. 만약 진출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같은 변화의 시대에는 더 빠르고 영리한 작은 기업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이희우: 그건 무슨 자신감 인가요? 당신은 쇼핑 관련 업무 경력도 없잖아요?
나: 없지만, 그것이 강점이 될 거에요. 변화의 시대에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공룡은 멸망할 거예요. 우리는 영리한 쥐입니다.
하지만, 미팅이 진행될 수록 나의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이희우: 번개장터가 당신의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인가요? 번개장터로 당신은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큰 돈을 벌려고 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장원귀: 이미 우리의 24시간은 번개장터와 함께 합니다.
이희우: 음.. 사업하면 돈을 벌어야죠. 그래야 투자자도 먹고 살죠. 근데, 수익모델은 뭐죠?
나: 상품수가 많아지면 상품 검색이 늘어나기 때문에 상품 리스팅 광고도 하고, 키워드 검색도 넣구요.
이희우: 아~ 리스팅 서비스를 하겠다. 그리구요?
나: 거래가 증가되면 거래에 결제기능도 붙여볼까 합니다.
이희우: 모바일결제라… 몇 % 받을려구요?
나: * % 받구요. 그리고 회원수가 100만, 200만 되면 더 다양한 수익모델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희우: 이거 인건비 많이 들어가는 사업 아니에요? 사람도 계속 뽑아야 하고, 결제 붙고 그러면 CS 인력도 더 많아져야 하고 등등
나: 결제 붙이는 건 회원수 200만 정도 달성하면 고민할 부분이라 현재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비스 고도화에 더 신경쓰면 되기 때문에 비용도 그리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 않구요. 좀 얘기하기 그렇지만 우리는 봉급 50만원 받고 창업자 네명이 똘똘뭉쳐 일하고 있습니다. 월 비용은 천만원 이하로 막을 수 있습니다.
이희우: (시큰둥하게) 뭐, 어쨋든, 잘 알겠습니다. 우리 설 연휴 끝나고 다시 보도록 해요.
어느 순간 머리 속에서 ‘설 연휴’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사업 시작과 함께 달력의 빨간 날은 내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되었기에. 갑자기,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대표님은 인사하고 떠나려는 우리를 급히 부르더니 설날 잘 보내고 집에 빈 손으로 가기 그러니 작은 선물이라도 사서 가라며 십만원권 백화점 상품권을 내미신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대표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길 안내자’ 라고 말이다. 그 후 몇 차례 만남이 더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의 투자자로 직접적인 인연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이를 두고 이 대표님은 선택을 했으면 그것이 최선이며 한번 결정했으면 절대로 뒤돌아 보지말라며 오히려 우리를 응원해 주셨다. 나는 3개월 뒤에 이 대표님의 권유로 학생의 입장에서 대표님의 재무 회계 대학 강의를 한 학기 청강했으며 강의에서 배운 재무 회계 기반 지식을 회사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희우 대표님과 함께 맛집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여행길 길 한 가운데서 여전히 만나고 있다.
끝으로, 사업을 하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 인생은 떨어진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떨어지는 동안의 ‘여정 또는 여행’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길 한가운데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우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시는 맞이할 수 없는 소중한 오늘을. 랜디 코미사의 수수께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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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 어떻게 살 것인가?
- 벤처캐피탈과 겸손
-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 잠깐 쉬어가자
-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 멘토링의 즐거움, 그리고 번개장터 장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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