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6.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1/2)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013년 5월 26일, 일요일 오후 3시. 고대 하나스퀘어. 다들 발표준비로 어수선하다. 이윽고 금요일 밤부터 2박 3일간 진행되었던 스타트업 위크엔드 대망의 발표순서. 제10회 한양대 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열띤 발표가 이어진다. 내가 질문을 던진다.
“54시간 동안 잠도 못자고 열악한 환경에서 다들 열심히 하신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앱을 누가 쓸지 의문입니다”
“우리 앱은 스마트폰으로 아주 간단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간단히 명함제작을 한다던가 급하게 디자인을 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아, 넵 알겠습니다”
또 다른 팀에 질문이 이어진다.
“뮤지컬 요소를 살짝 넣어서 하는 건 좋은데 발표 내용에 알맹이가 없는데요?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잘 안가요”
이런 질의응답 시간이 다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최종 평가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캡스톤 송은강 대표님이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는데, 급한 일이 있어 자리를 떠야 된다면서 나에게 위원장 자리를 넘기셨다. 순간 당황. 심사 총평을 해야하는데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심사평도 재빨리 정리하고 심사도 마무리 짖고 최종 결과 발표만 남겨두게 되었다.
시상은 베스트 UX/UI 상, 엔지니어링 상, 프리젠테이션 상, 그리고 스타트업 위크엔드의 꽃 비즈니스모델 상으로 구분해서 하게 된다. 시상에 앞서 발표 총평을 했다.
“전반적인 수준은 지난 번 대회보다 높아진 것 같습니다. 54시간 동안 뜬눈으로 기획, 개발, 디자인한 여러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상이란 것은 심사위원들의 눈으로 평가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큰 상은 고객과 시장이 주는 것입니다. 이번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여러분의 서비스가 시장에서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상 못받으신 분들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네트워킹의 장입니다. 같은 팀, 옆 팀의 동료들이 실제 창업 시 다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그러니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주말동안 스타트업을 간접 체험하는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창업으로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번개장터, 모글루, 모두의주차장 등의 창업자들도 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출신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행사가 여러분의 창업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면서 심사평을 마칩니다.”
이렇게 평을 하고 각 부분별로 수상자를 발표했다. 상금은 100만원 밖에 안되지만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기념사진 촬영도 하고 그렇게 시상식이 끝나고 고대 내 식당으로 이동해서 늦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우연히 주차장 공유서비스를 하시는 모두의주차장 강수남 대표님 옆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강대표님, 심사위원장을 두 번째 하고 있는데 점점 감도 떨어지고 잘 모르겠어요. 재미도 없구요”
“그럼, 다음 대회 때는 직접 참가해 보시는 것 어때요? 재밌는데.”
“오! 제가 참석하면 민폐 아닐까요?”
“괜찮아요. 삼성전자 김규호 전무님도 앤센터운동본부 김진형 교수님도 기획자로 참석한 적 있는데요 뭐.”
“그래요? 그럼 한번 참석해 볼께요”
그렇게 답한 게 세 달 전이다. 8월 말인데 기획자로 참가할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덜컥 참가하겠다고 얘기는 해 두었는데, 그리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는데, 행사가 코 앞으로 다가오니 불안감이 엄습한다. 꾸역꾸역 아이디어 여섯 개 정도 에버노트에 정리에 두었는데 다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차 일본에서 출시된 비밀폴더 앱을 접하게 된다. 패턴을 인식해서 비밀폴더로 들어가면 그 폴더안에 사진, 전화번호, 노트 등의 개인적인 정보가 들어있는 사생활보호기능이 강조된 앱이다. 아하!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바로 에버노트에 기록해 두었다.
8월말 아이디어를 모바일로 등록했다. 스무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접수되었다. 긴장된다. 지난 11회 대회에서는 후배 정장환이 기획자로 참가해서 100초 스피치 때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혹 내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다.
이번 12회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크루즈 안에서 펼쳐진다. 스타트업 행사를 크루즈에서 하는 것을 기획한 앱센터도 대단하다. 더 재밌는 것은 기획 아이디어가 떨어졌다고 집으로 갈 수 없다는 점이다. 갇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타트업 행사의 묘미라고 해야 하나. 사실 이번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금요일 밤에 있는 강의를 선배 형에게 부탁했다. 그 형이 대타를 안 해줬다면 이번 행사를 못 갔을 것이다.
9월 6일 오후 4시, 안양에서 일을 마치고 인천항연안부두터미널로 차를 몰았다. 길이 막히지 않고 시원스레 뚫렸다. 오후 5시 쯤 도착하자 낯 익은 얼굴들이 좀 보인다. ‘쫄지마! 창업스쿨’ 수강생도 있고, 쫄투 팬도 있고.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잠시, 난 기획자로 표시된 내 명찰과 스타트업 위크엔드 티셔츠를 전달 받았다. 바로 그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이제 곧 스타트업 위크엔드가 시작된다.
배에 타자마자 저녁 식사를 했다. 긴장되는 행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밥 맛은 기대 이상 꿀맛이었다. 이제부터 달리는 일만 남았다. 식사 후 바로 100초 아이디어 스피치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이디어 접수순으로 하게 되어 내가 첫 번째 주자로 나섰다. 이상하게 떨렸다. 그래도 주머니에 연양갱 두개를 넣고 무대로 나갔다. 사실 행사가 벌어지는 곳은 3등칸(꼬리칸) 이벤트 홀이었다. 의자도 없는 그런 넓은 방 같은 분위기다.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그리고 말미에, 양갱을 들어 보이면서 “우리팀에 오시면 설국양갱을 맘껏 드리겠습니다. 좋은 개발자와 디자이너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정확히 100초를 다 소진했다. 역시 이런 발표는 먼저 해야 맘이 편하다. 그리고 느긋하게 다음 발표를 들었다. 거의 서른 개가 넘는 아이디어 발표가 끝나고 곧바로 모바일로 투표에 들어갔다. 1인당 세번 투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투표가 진행되는 현황이 큰 스크린으로 보인다. 앗! 내 아이디어가 상위권에서 맴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 결국 3위로 끝났다. 아이디어 10위까지 채택되는데 무사히 첫 커트라인은 통과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제 내가 내 아이디어를 구현할 팀의 팀장이 되는 거다.
그 다음 순서는 선상 불꽃놀이 쇼다. 그런데 쇼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냐면 바로 팀빌딩 순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두운 밤바다에서 터지는 불꽃은 아름답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우린 다시 3등석 꼬리칸으로 모여들었다.
10개의 기획 아이디어가 번호 순서대로 A4지에 프린트되어 바닥에 붙어져 있다. 그리고, 자기가 맘에 드는 아이디어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가 자기 이름을 쓴 포스트잇을 붙이게 되어 있다. 살벌한 팀빌딩 순간이다. 난 이미 베테랑 서버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 기획자 1명을 섭외해둔 상태였다. 추가로 어떤 사람들이 들어올까 맘을 졸이면서 포스트잇 붙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우리 팀엔 나를 포함해서 기획자 2, 디자이너 2, 개발자 3명이 확보되었다. 총 7명. 많은 사람들이 몰린 팀은 각 영역별로 가위바위보로 해서 탈락된 사람을 다른 팀으로 임의배정했다. 불만은 없었다. 불만 있어도 집에 갈 수 없는 크루즈니깐. 그렇게 기획자 20명, 디자이너 20명, 개발자 30명이 각 팀당 7명 씩, 총 10개 팀이 구성되었다.
팀빌딩이 끝나자 마자 기획회의에 필요한 장비(큰 종이 보드, 마커펜, 포스트잇, 멀티탭 등)와 식량(초코렛, 물, 과자, 사발면 등)이 보급되었다. 꼬리칸 중에서도 후미쪽에 자리를 잡고 둥글게 모여 앉았다. 우선 약속한대로 연양갱(일명 설국양갱)을 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팀명을 정하자는 얘기에 다들 ‘설국 크루즈’를 외친다.
그게 ‘설국 크루즈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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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 어떻게 살 것인가?
- 벤처캐피탈과 겸손
-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 잠깐 쉬어가자
-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 멘토링의 즐거움, 그리고 번개장터 장영석
- 사업계획서 작성, 모방과 훔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