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30. 不惑(불혹)의 벤처투자자들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매주 매주 다가오는 원고의 압박은 때론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스트레스 쪽으로 더 다가오는 편이다. 그래서 지난 주는 연재를 쉬었다. 쉰 것은 스트레스 때문 만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글이 점점 학생들 가르치는 투로 바뀌는 것 같아 그게 싫어 시간을 가진 것이다. 내 얘기를 쓰려고, 나의 어설픈 경험담을 통해 뭔가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인데 일방적으로 스타트업은 이래야 된다고 가르치려고 들고 있는 나를 보게 되다니.
연대 공학원 지하 까페이다. 홀로 앉아 노트북을 꺼내든다. 이어폰에선 시끄러운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온다. 심장까지 그 박자에 맞춰 요동치는 것 같다. 아, 이 기분은 흡사 두 달 전 논현동 모 클럽에서 헤드폰을 끼고 디제잉을 하던 류중희(올라웍스 창업자) 박사의 테크노 사운드를 들었을 때 느꼈던 것과 같다. 류박사 주최 파티에 또 한번 놀러가야 되는데.
TVN의 ‘응답하라 1997’에 심히 빠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응답하라 1994’에 빠져 있지만. 불혹의 나이가 되고 나서 이상할 만큼 추억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것 같다. 不惑, 어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푸른 하늘과 떨어지는 낙엽에도 흔들리는 마음인데. 가을이라 더 그런가?
지난 8월 어느 날 벤처캐피탈에 몸담고 있는 몇몇 분들과 골프를 쳤다. 다들 주요 VC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이다. 투자 성과도 좋아 펀드 결성에도 문제가 없는 양반들인데 여러 고민이 있는 듯 싶었다.
“벤처투자해서 개별 프로젝트가 돈 번다고 해도 시스템 잘 갖춰 있는 몇 군데 빼곤 내가 인센티브로 떼돈 버는 것도 아니고”
‘맞아. 미국에선 페이스북 투자 잘해서 1~2조원을 인센티브로 가져가는 데도 있는데. 그렇다고 독립하기도 쉽지 않고. 맘 맞는 사람 잘 만나야 하는데”
“그렇지, LLC(유한회사형 창업투자회사)를 한다고 해도 프리미어, 캡스톤, 이노폴리스 등 잘나가는 몇 군데 빼고는 LLC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데도 있고 해서. 글쿠, 우리나라에선 파트너쉽 즉 동업의식을 갖는 파트너 개념이 아직 덜 정착된 것 같아. 파트너끼리 서로 존중해 줘야 파트너쉽이 오래 유지가 되는건데”
“그런 의미에서 DSC처럼 50억원 정도로 심사역들이 창투사를 설립해서 펀드를 일년에 한 두개 만들어 가던가, 아님 약간 비실대는(?) 창투사를 저가에 인수하는 것도 좋고”
“나도 LLC보다는 창투사 만들어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LLC들은 당장 펀드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파트너/심사역들 봉급주는 게 걱정이거든”
이런 얘기가 오갔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난 약간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동석한 분들은 완전히 자리 잡은 벤처투자자들이지만 난 스타트업 토크쇼 ‘쫄투’니, ‘쫄지마! 창업스쿨’ 같은 스타트업 교육 같은데 관심을 가지고 약간 다른 길을 가고 있으니. 정녕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각자 할 다른 역할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그럼 우리도 50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서 난 그런 선수급들을 꾸준히 만나고 미래를 얘기하고 있지”
“그치. 이 바닥은 역시 사람이야. 사람이 중요하지”
“너네와 함께 있어 나도 영광이다.”
그렇게 골프는 진작 끝났는데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술도 없이 남자 네 명이 세시간 가까이 수다를 떤다. 그러고 보니 내가 벤처투자 업계에 들어 온 지도 어느새 17년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많은 회사들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늘의 명을 안다는 知天命(지천명)이 되어서도 이 업계에 있을 지 알 수는 없지만 난 그래도 이 업계를, 그리고 이 업계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연대에서 하는 창업관련 강의도 이제 2주만 남았다. 초기엔 과제도 참 많이 내고 저녁자리도 많이 갖고 했었는데, 내가 맘만 앞섰지 정작 수강생들은 과제도 좋아하지 않고 밥 사준다고 해도 많이 오지도 않았다. 이런 낯선 느낌도 오랜만이다. 그래도 매주 연대 캠퍼스를 거니는 것은 좋은데. 소수지만 열정적으로 따라준 제자들도 보고 싶을 것이고, 그들의 커 가는 비즈니스도 보고 싶을 것이다.
테크노 사운드는 여전히 고막을 친다. 잠시 후면 수업이 시작된다. 그냥 이 상태에서 맥주 한잔 걸치며 그 사운드에 몸을 맡기고 싶다. 그러기엔 오늘 가을 하늘이 너무 좋다. 그래도 강의하러 가야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윤선의 ‘Breakfast in Baghdad’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난 다시, 잠시, 자리에 눌러 앉는다.
[divide]
-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 어떻게 살 것인가?
- 벤처캐피탈과 겸손
-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 잠깐 쉬어가자
-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 멘토링의 즐거움, 그리고 번개장터 장영석
- 사업계획서 작성, 모방과 훔치기
-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1/2)
-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2/2)
- 스타트업, 어떻게 마케팅 할 것인가?
- 왜 창업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