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31. 스타트업 기업가치 협상의 함정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2012년 2월, 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세 달 가까이 걸린 투자심사 과정을 통해 투자해도 될 것 같다는 내부 합의에 도달했다. 마지막 심사보고서를 앞두고 그 동안 얘기했던 회사 기업가치(Value)와 최종 투자 주식수를 확정 짓는 절차만 남겨두었다. 그래서 엑셀로 투자 주식수, 투자 단가, 투자 후 지분율 등을 정리한 표를 만들어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스타트업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대표님! 자료 잘 받았는데요, 우리가 얘기했던 Value가 프리 20억 아니었나요?”
“아니죠, 포스트 20억이었죠. 우리가 5억 투자하니 지분 25% 갖게 되구요.”
“전 프리로 20억(포스트 25억)이라 20% 지분 나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지분 차이가 5%나 나는데요”
“그냥 포스트 20억원으로 하시죠? 우리 심사보고서도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우리 내부에서도 당연히 포스트로 알고 있고, 그렇게 본사에도 보고를 했거든요.”
“아~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십시오.”
“넵, 그래요. 이번 주 중으로 답 주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이대표님, 그냥 포스트 20억으로 하시죠. 다시 다른 VC 만나서 시간 끌기도 그렇고, 지금 돈도 필요하니 그렇게 가시지요.”
“아 넵, 감사합니다. 그럼 포스트 20억원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벤처캐피탈에선 비일비재 하다. 이게 밸류에이션의 함정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벤처캐피탈은 투자검토 초기에 밸류 협상 시 프리 밸류(Pre-Money Value, 투자전 기업가치)인지 포스트 밸류(Post-Money Value, 투자후 기업가치)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투자검토를 2, 3개월 가량 진행한 다음 마지막 최종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를 앞두고 포스트 밸류로 하자고 우기기도(?) 한다. 이렇게 벤처캐피탈이 우기면 스타트업 입장에선 그걸 뒤집기가 쉽지 않다. 왜냐면 새로 벤처캐피탈을 만나서 다시 투자협상을 진행하기에 스타트업 창업자는 이미 지쳐있고, 그렇다고 돈 없이 버틸 체력도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이 5억원을 20억 기업가치로 투자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투자후기업가치(Post-Money Value) 20억에 투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5억원을 투자하게 될 경우 벤처캐피탈은 총 25%(5억/20억)의 지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창업자가 5억원을 투자전기업가치(Pre-Money Value) 20억원에 투자유치를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이럴 경우 투자후기업가치는 25억원이 되며 벤처캐피탈에겐 20%(5억/25억)의 지분을 주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반면, 벤처캐피탈은 25%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즉, 투자전기업가치와 투자후기업가치를 혼동하는 순간 창업자는 5%의 지분을 잃을 수 있단 말이다. 표면적으로 같은 기업가치를 얘기 하고 있지만 벤처캐피탈은 투자후기업가치를 창업자는 투자전기업가치를 맘 속에 두고 있다. 그래서, 창업자들은 투자전기업가치와 투자후기업가치가 얼마인지 기업가치 협상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럼 왜 벤처캐피탈이 투자협상시 투자후기업가치를 주로 사용하는가? 그건 우선 알기 쉽기 때문이다. 투자금액을 투자후기업가치로 나누면 바로 벤처캐피탈의 지분율이 나오게 된다. 10억원을 100억원 포트스밸류로 투자하게 되면 벤처캐피탈은 10%(10억/100억)의 지분을 갖게 된다. 이 얼마나 알기 쉬운가? 둘째, 한 벤처캐피탈이 10억원 투자하기로 했는데 그 스타트업이 매력 있어 다른 벤처캐피탈도 10억원을 추가로 들어온다고 한다면 포스트밸류로 투자협상을 해둔 벤처캐피탈은 지분율은 10%로 고정되나 실제 투자단가는 프리밸류 90억원에서 80억원으로 줄어들어 가격이 11% 인하되는 효과가 있다. 셋째, 혹 프리밸류와 포스트밸류를 혼동하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그걸 이용해서 밸류를 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벤처캐피탈은 포스트밸류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다시 한번 설명을 해보자. 애초에 프리밸류 90억원으로 10억원의 투자유치를 한다고 했으면 그 기업은 한 벤처캐피탈이 들어오면 10%(10억/100억) 지분만 주면 된다. 그런데 다른 벤처캐피탈도 10억원을 투자한다고 한다면 프리밸류 90억원에 20억원(각 10억원 씩)이 들어와 최종 그 기업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지분은 18.18%(20억/110억)가 된다. 즉, 각 벤처캐피탈 당 10% 씩 나갈 지분율이 9.1%로 0.9%P 줄어들어 자금 유치하는 기업 입장에선 투자기업 가치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것이 프리밸류와 포스트밸류의 밸류에이션 함정이다. 투자전기업가치, 즉 프리밸류는 투자금액이 많아지던 적어지던 변동이 없는 불변의 가격이다. 그런데, 포스트밸류는 그 계산식이 프리밸류에 투자금액을 더한 개념(Post-Money = Pre-Money + 투자금액)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더 늘어나 투자금액이 많아지면 질 수록 기업가치는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반대로 투자금액이 줄어들어 프리밸류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현실에선 이런 현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면 스타트업 입장에선 애초 계획했던 자금보다 적게 들어오는 것이 때문에 자금 스케줄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투자자가 더 들어온다고 하는데 하지 말라고 막을 수 있는 스타트업도 드물기 때문에 포스트밸류로 투자유치 협상을 하는 것은 무조건 스타트업 입장에선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하다. 무조건 프리밸류로 투자협상을 해야 한다. 혹 벤처캐피탈이 혼동할 수 있기 때문에 “프리밸류로는 얼마, 투자금액이 얼마이니 포스트밸류로는 얼마가 된다”라고 명확하게 확인해 줄 필요가 있다.
프리/포스트 밸류 함정을 이용하는 벤처캐피탈이 양아치(?) 같아 보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협상법은 스타트업의 메카 실리콘밸리도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이 또한 기업가치를 깎기 위한 벤처캐피탈의 능글능글한 협상법 중의 하나로 봐 줄 수 있겠다.
그런데, 나 오늘 이런 글 올리고 벤처캐피탈 선후배로부터 돌팔매 맞는 것 아닌가 몰라? 벤처캐피탈이 드러내기 꺼리는 치부 중 하나일텐데. 불안 불안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라도 기업가치 협상 시 혼동이 안 생기도록 더 노력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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