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11월 초에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매번 샌프란시스코로 향할 때면 기분이 묘하다. 흡사 종교 집단의 성지로 가는 기분 같다. 그건 실리콘밸리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은 하는 우리 같은 이들에겐 성지나 같은 도시이기 때문이겠지.
매번 LP(벤처캐피탈의 펀드에 투자해주는 투자자)를 만나러 가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다. 이 순간 만큼은 – 갑과 을로 표현하자면 – 갑을의 관계가 뒤바뀌는 때이기 때문이다. LP에게 보고할 자료를 준비하고, 발표 연습도 하고 그러다 보면 10시간의 비행이 결코 즐겁지 만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시각은 또 어떤가? 오후 4시경 비행기를 타서 아침 10시경 도착하면 시차 적응도 안되고 피로 또한 급속도로 몰려온다. 시내 호텔에 짐을 풀면 점심 시간, 그리고 연달아 있는 미팅들.
도착한 다음 날은 하루 종일 회의가 잡힌다. 스무 명 남짓 참가하는 IDG 파트너 회의는 통상 아침 7시 30분부터 함께 식사를 하며 시작한다. 점심도 함께 먹고, 그리고 저녁까지 같이 하다 보면 가뜩이나 안되는 영어로 머리에 쥐가 내리기도 한다.
올해는 아니었지만 작년 까지만 해도 난 주로 John Breyer (Accel Partners 창업자, 전 IDG 초창기 직원) 옆에 주로 앉았다. 그의 아들이 현재 Accel Partners(Facebook, Supercell, Rovio, Admob, Groupon 등 투자)를 이끌고 있는 Jim Breyer이다. 그런 인물 옆에 앉아서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은 한마디로 짜릿하다.
그는 헝가리 유학생 출신으로 MIT를 졸업한 직후 IDG에 합류하여 20여년 가까이 IDG를 McGovern 회장과 함께 일군 인물이다. 그의 아들이 스탠포드대학을 다니게 됨에 따라 보스톤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오면서 설립한 회사가 바로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벤처캐피탈 중 하나로 꼽히는 Accel Partners이다. 그는 Accel Partners의 기반을 닦고 아들에게 물려준 다음 주로 IDG-Accel (중국) Fund에 힘을 싣고 있다.
Accel Partners의 페이스북 투자 실제 사례도 그의 옆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듣게 되었다. 초기 주크버그를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워싱턴포스트와의 M&A 무산 등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은 비화를 들을 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물론 아들이 페이스북 지분을 1%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고, 그 Value가 1조가 넘는 다는 얘기를 할 때나, 자가용 비행기, 요트 얘기 등을 할 땐 빈부의 격차(?)를 심하게 느끼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번 VC 사업 부문 발표는 단연 중국이 압도했다. 안드로이드폰 최고의 런처인 Go런처부터 Xunlei 까지 한 분기에 시가총액 1조에 가까운 IPO 대박 2개 터트렸으니. 나 스스로도 한없이 쪼그라 들었다.
막막한 부러움과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미국에서 돌아온 지 1주 정도 되었을 무렵, 그로부터 이메일이 한 통 날라왔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와 거의 얘기를 못 나눈 터였는데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 준 것이다. 일흔 중반의 노 신사의 이메일은 나의 가슴을 다시 고동치게 만들었다.
Dear Matthew
It was nice listening to your presentation on Korea at the recent IDG VC meeting in San Francisco. You also gave us a nicely organized and enjoyable handout. Well done!
Best regards,
John
일요일 새벽 7시에 온 이메일, 난 그 이메일을 읽은 후 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와 같은 거물의 따뜻한 칭찬 한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뜨거운 가슴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가장 큰 후원자이며 르네상스를 꽃 피우게 만든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르네상스 연구하면 연세대 ‘김상근 교수님’이 떠오른다. 그가 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에 나오는 얘기다.
로렌초 메디치가 소년 미켈란젤로가 길거리에서 노인 조각상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노인의 치아가 너무 튼튼하다고. 그 말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귀족이며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로렌초의 관심에 감동하여 밤을 지새워 이빨을 다 뽑아내고 주름살 가득한 노인 조각상을 만들게 된다. 로렌초가 상상했던 그 노인의 모습보다 더 노인 같이 생생한 조각상. 그것을 본 로렌초는 미켈란젤로를 바로 양자로 받아들여 그가 위대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해 준다. 즉, 로렌초의 관심과 말 한마디가 미켈란젤로의 예술혼을 들끓게 만들었고 그의 이상은 미켈란젤로를 통해 실현되어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켄블랜차드가 쓴 ‘겅호’에도 잘 나와 있다. 그는 열정(Enthusiasm)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적절한 임무(Mission) 곱하기 그 사람에 대한 격려/칭찬(Congratulation) 곱하기 물질적 보상(Cash)이라고 한 바 있다. 로렌초 메디치도 미켈란젤로에게 적절한 임무와 격려 그리고 물질적 보상으로 미켈란젤로의 열정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스타트업을 경영해 나갈 때 사업이 잘 안 풀려 고민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팀원(조직원), 공동 창업자, 동료 등 사람에 의해 상처 받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상처를 안 주기 위해서는 상처받을 말과 행동을 줄여야 한다. 그런 다음엔 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들로부터 열정이 솓아오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진정한 리더라면 조직 구성원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뜨거운 피가 들끓게 말이다. 상처 받을 말 보다는 세심한 관심 갖고 따뜻한 말을 한번 던져보라. 그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이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메디치가가 350년 이란 기간 동안 두 명의 교황과 두 명의 왕비를 배출하며 유렵의 문화(르네상스)와 경제를 움직인 그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칭찬, 그리고 본인을 한 없이 낮추려는 겸손함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을 꿈꾸시는가? 그러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메디치가 했던 것처럼.
그리고, 난 바로 John에게 답장을 보냈다.
Dear John,
Thank you for your kind words of encouragement. I hope that I could show you better performance next meeting.
Best regards,
Matthew
[divide]
- 연재를 시작하며
-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 벤처캐피탈 입문
- 미뤄진 인생계획
- 영화투자의 시작
- 벤처투자의 기초
- 닷컴 그 늪에 빠지다.
-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 벤처캐피탈과 사주
-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 어떻게 살 것인가?
- 벤처캐피탈과 겸손
-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 잠깐 쉬어가자
-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 멘토링의 즐거움, 그리고 번개장터 장영석
- 사업계획서 작성, 모방과 훔치기
-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1/2)
-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2/2)
- 스타트업, 어떻게 마케팅 할 것인가?
- 왜 창업을 하는가?
- 不惑(불혹)의 벤처투자자들
- 스타트업 기업가치 협상의 함정
- 콜럼버스를 통해 배우는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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