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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32. 콜럼버스를 통해 배우는 기업가 정신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 11월 초 SK플래닛에서 주최한 스타트업 토크 콘서트에 초대 받았다. 캡스톤파트너스 송은강 대표님이 추천을 해주신 것이다. 덜컥 수락은 해 놓았는데, 알고 보니 부산에서 열리는 것이 아닌가? 송대표님 왈, ‘니가 가라 부산!’ 그래서, 하루 다 소비(?) 하며 부산을 다녀왔다. 물론 오랜만에 학교 선배도 만나고, 부산의 창업열기도 느끼고 올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무슨 내용을 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러다 꺼낸 것이 내가 제일 많이 써먹는 ‘콜럼버스’ 이야기 이다. 콜럼버스의 야망과 리더십,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이사벨라 여왕 얘기를 하고 싶었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얘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역사상의 인물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 ~ 1506)이다. 이탈리아 제노바 평민 출신인 콜럼버스는 일찍이 조선업과 무역업이 발전한 제노바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 당시 유럽은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 왕실간의 잦은 전쟁과 이베리아반도(스페인, 포르투갈)를 700년 동안 지배한 아랍인들을 내모는 작업으로 생산력의 한계에 도달한 시점이었다.

당시 시장상황을 벤처캐피탈 식으로 풀어보자. 유럽이라는 한정된 시장(레드오션)과 각 기업들이 소모적인 할인 전쟁(왕실간 전쟁)으로 기업의 채산성이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었고, 원재료(바단, 향신료 등)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레드오션 시장에서는 생산성 증대와 시장확대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결국은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으로 이끌게 된다.

성장이 정체되면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돌파구는 새로운 시장(블루오션)과 새로운 산업 밖에 없다. 콜럼버스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비젼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차근차근 신대륙 탐험에 대한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단계로 지도제작을 통해 명성을 얻어갔으며, 선장 출신 장인을 통해 입수한 대서양 항로를 개선해 나가며 사업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큰 그림이 완성되자 그는 신대륙 항해를 후원해줄 투자자(벤처캐피탈)를 찾아 나섰다. 그는 투자유치를 위해 프랑스, 독일, 포루투칼 등 여러 나라를 수년간 돌아다녔지만 돈을 구하지 못했다. 오직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투자자)이 그의 야망을 보고 후원을 자청했다.

이사벨라 여왕이 쉽사리 후원을 자청한 것은 물론 아니다. 여왕 나름대로 항해 그의 준비 사항을 면밀히 점검했다. 즉, 철저한 사업성검증(Due-Diligence) 과정을 거친 것이다. 예상 항해 루트(전략)를 점검하고, 준비 사항을 철저히 검증했다. 마침내, 사업성을 검증 받아 투자유치에 성공한 콜럼버스는 본격적으로 선원(인적자원)을 모으고 항선(생산설비)을 만들고 신대륙(성공, 투자회수)을 위해 산타마리아(사업체)호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출항한다.

신대륙으로 가는 과정이 순탄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으로 항해하는 동안 거센 풍랑(외부 Risk)도 만나고 신대륙 발견(도착) 지연에 따른 내부 폭동(내부 Risk)도 참고 이겨내야 했다.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신대륙에 도착한 그는 신대륙에서 획득한 전리품(원주민, 금은보화 등)을 가득 싣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진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사벨라 여왕도 콜럼버스도 모두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투자한 회사가 고가에 상장되어 창업자와 투자자들에게 거대한 수익을 돌려주는 것과 유사하다.

콜럼버스와 이사벨라 여왕의 관계는 위대한 기업가와 벤처캐피탈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퇴짜 맞은 사업계획을 이사벨라 여왕은 콜럼버스의 야망과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였고(Risk Taking), 그 사업계획은 콜럼버스라는 위대한 리더(기업가)를 통해 현실화 되었다. 결국 신대륙 발견을 통해 스페인은 거대한 식민지를 얻게 되었고, 콜럼버스가 발굴한 신항로를 통해 세계 무역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이며 생산적인 관계인가?

기업가와 벤처캐피탈의 만남도 이런 만남이어야 한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이 필요하다. 원대한 이상을 가진 콜럼버스처럼 기업가들은 미래에 대한 안목과 도전정신 그리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하며, 벤처캐피탈은 그런 사업계획을 발굴해 낼 수 있는 안목과 성공까지의 성장지원 그리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창업환경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액셀러레이터, 앤젤, 초기기업전문펀드 등 자금지원 시스템도 체계화 되어 가고 있고, 창업공간도 지원해 주는 곳이 많이 생겼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으로 열린 모바일 세상은 적은 비용으로 회사 설립이 가능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성장속도 면에서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전선에 뛰어 들고 있으나 아직까지 콜럼버스처럼 큰 야망을 갖고 뛰어드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실리콘밸리는 흔히 그들이 창업을 하는 그 장소가 세상의 중심이라 여긴다. 그래서 그들의 비젼은 ‘세상을 바꾸자(Change the world)’ 류가 많다. 당연히 그 곳에선 큰 세상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인력 면에서는 실리콘밸리에 절대로 밀리진 않는데 – 물론 시장크기와 자금지원 규모에서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 야망의 크기 면에서는 그 격차가 너무 큰 듯 하다. 큰 그림을 그려야 그 그림의 반이라도 달성하지 않을까? 우린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이 이리도 가까이 있는데…

콜럼버스가 이태리 제노바의 항구 도시에서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라는 야망을 키웠던 것처럼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도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며 더 큰 야망을 키워갈 수 있는 젊은이가 많이 생기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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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지난회 보기 

  1. 연재를 시작하며
  2. KTB 민영화, 그리고 한편의 詩
  3. 벤처캐피탈 입문
  4. 미뤄진 인생계획
  5. 영화투자의 시작
  6. 벤처투자의 기초
  7. 닷컴 그 늪에 빠지다.
  8. 글쓰기, 그리고 홍보팀으로 버려지다
  9. 벤처캐피탈과 사주
  10. 스타트업과 인센티브
  11. 네 번의 청혼, 한 번의 승낙
  12. 창업자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
  13. 영화투자와 M&A의 갈림길에 서서
  14. 길거리 캐스팅, 그리고 IDG
  15. 벤처캐피탈의 자녀 금융교육법
  16. 두 번의 죽을 고비, 그리고 무한 긍정의 힘
  17. 쇼트트랙 넘버3의 행운
  18. 어떻게 살 것인가? 
  19. 벤처캐피탈과 겸손 
  20. 초대받지 못한 파티, 그리고 쫄투의 인연
  21. 창업스쿨을 열다 – 린스타트업 방식의 접근법
  22. 잠깐 쉬어가자
  23. 발상의 전환과 실행력
  24. 멘토링의 즐거움, 그리고 번개장터 장영석
  25. 사업계획서 작성, 모방과 훔치기
  26.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1/2)
  27.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기획자 참가기 (2/2)
  28. 스타트업, 어떻게 마케팅 할 것인가?
  29. 왜 창업을 하는가?
  30. 不惑(불혹)의 벤처투자자들
  31. 스타트업 기업가치 협상의 함정

1997년 KTB 네트워크에서 벤처캐피탈에 입문한 후 현재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를 설립 및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을 위한 고품격 투자상담 토크쇼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교육에 관심 많아 예비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쫄지마! 창업스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그 동안 플래텀에 연재한 글과 새로운 창업이야기를 담은 ‘쫄지 말고 창업(이콘출판)’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 창업, 스타트업, 기업가정신 등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론 그쪽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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