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서는 데 와이프가 베란다에 있는 빵을 먹고 가란다. 양재역 부근의 빵집에서 아는 회사 대표님이 선물로 사준 슈크림빵. 커피 한 잔과 더불어 슈크림빵을 먹고 산뜻하게 회사로 출근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너무 느끼한 것을 먹었나 보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서 점심은 순대국에 양념장을 잔뜩 풀어서 얼큰하게 먹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 뻬리에 한 모금 마시는데 아랫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화장실에서 일을 치르며 아이폰을 만지작 거렸다. 뉴스도 보고 페북도 뒤지고 얼추 15분 가량 지났다. 이제 비데로 뒤를 씻어야 할 차례이다.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약간 미지근한 물줄기가 항문을 정통으로 맞춘다. 약간 움찔 하면서도 미세한 쾌감이 느껴진다. 순간 갑자기 이번 주 글 쓸거리가 떠오른다.
‘그래,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와 우리의 인생을 한번 엮어보면 어떨까?’
왜 이런 생각이 그 순간 떠올랐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평소에 글 쓸거리 고민은 많이 하고 있지만 이번 주제는 평소의 고민과는 다소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똥구멍에 물줄기 맞으며 번뜩 든 생각이라 한 번 써볼까 한다.
우선 비즈니스 모델이 뭔가?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가치(Value)를 창출(Create)하고, 전달(Deliver)하고, 수확(Harvest)해 가는 원리이다. 여기서 가치(Value)란 것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 등을 말한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도화지에 그려 놓은 것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이하 ‘BM 캔버스’)이다.
그럼 왜 이런 BM 캔버스를 그리게 되는가? 그 이유는 BM 캔버스를 그려봄으로써 BM 상의 각 부분간 관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BM상의 가설, 가정과 위험요소들을 식별 가능하게 되며, 사업계획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으며(Market, Channels, Pricing 등), 가치를 증대시키며 비용을 축소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결국 시장에서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전략을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용한 점 때문에 나도 BM 캔버스를 창업관련 수업 시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정작 사업은 이런 캔버스도 그려가며 나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준비하는데 우리 인생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 하필 똥꼬에 물줄기가 분사 되는 그 순간 떠오른 것이다.
우리의 삶도 뭔가 세상에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 사람이 세상에 나왔으면 응당 뭔가를 하나 남기고 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가치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정확히 인식해야 알 수 있는 법이다. 즉,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해야 그 이유에 맞게 살게 되고 그렇게 살게되면 뭔가 세상에 이로운 가치를 남기고 가지 않겠는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BM으로 말하면 세상의 문제점, 해결해야 될 고통(Pain Point)에 대한 기술 및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BM 캔버스의 시작이나 다름 없다. 이런 문제점, 고통을 보유한 층이 바로 고객(Customer)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객을 인식해 가는 과정이 고객 세분화(Customer Segmentation) 과정인 것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한 이해와 그 대상이 정해졌다면 우리는 그런 문제점, 아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를 내 놓아야 한다. 이 과정이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 이다. BM 식으로 풀어보면 ‘내가 왜 그 물건/서비스를 써야하지?’에 대해 답하는 과정인 것이고 이 과정을 거쳐야 구매로 까지 이어지는 핵심 과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인 듯. ‘내가 왜 널 써야(고용해야) 하지, 우리 사회가 왜 널 써야 하지, 너가 사회에, 경제에, 국가에 어떤 가치를 줄 거지?’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이 내가 사회에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치제안은 실로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이들이 다 창업을 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기존의 서비스를 개선시키고 등등을 하란 얘기는 아니다.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은 많다. 한 조직의 일원이 되어서 할 수도 있고 창업을 해서도 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목적의식 만은 잊지 말란 얘기다. 본인이 지닌 가치를 세상에 던지는 것, 이 과정이 BM 캔버스로 말하면 유통채널(Distribution Channel) 과정이다. 각 개인으로 치면 직장생활, 자영업, 창작활동, 창업 등이 그런 가치를 제공하는 수단(채널)이 되는 것이고.
그럼 그 다음 단계는 어디로 넘어가는가? 본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세상의 문제점을 향해 끊임 없이 연구하고,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다음 단계인 ‘고객관계(Customer Relationship)’ 단계이다. BM 캔버스로 말하면 고객을 확보하고(Get), 유지하고(Keep), 성장시켜(Grow) 가는 단계에 해당된다. 우리도 자신이 목표로 삼은 가치를 향해, 자신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향해, 그런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보, 유지,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과연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단계까지만 거쳐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이런 비젼을 가지고 살아온, 그리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이라면 어느 직장에서 안 뽑을 것이며,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해도 좀 더 성공에 가까이 가지 않을까? 이 단계가 수익구조(Revenue Stream) 단계이다. 이렇듯 먹고 사는 문제는 앞의 네 단계를 충실히 이행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 이 단계가 핵심자원(Key Resources) 단계이다. 사업으로 치면 ‘어떤 인프라와 자원들이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데 있어 필요한가?’를 기술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선 물리적 공간, 자금, 인적자원, 지적재산권 등이 포괄된다. 인생으로 치면 이 단계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하는데 있어 내가 갖춰야 할 자질이 뭔가를 고민하는 단계이다. 난 벤처투자를 하기 위해 경제학, 경영학을 공부했고, 일찍이 벤처캐피탈에 입문해서 전문지식도 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배양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떤가? 핵심자원을 많이 내재화 하였는가? 자금이든, 네트워크든 아님 그 어떤 것을 내재화 하였는가?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사업에서도 다양한 기업활동 중에 그 기업의 핵심과 관련한 핵심활동이 있기 마련이다. 컴퓨터 제조사 Dell 이라면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고, 컨설팅회사 맥킨지라면 소속 컨설턴트들의 동질한 수준의 컨설팅(문제해결) 능력 배양이 핵심활동이 될 것이며, 아마존 이라면 고객만족에 모든 기업역량을 집중한다. 그래도, 난 벤처투자 및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뜻한 바가 있어 스타트업 토크쇼 ‘쫄투’도 진행하고, 스타트업 창업교육 ‘쫄지마! 창업스쿨’, 그리고 글로도 알리려고 ‘쫄지마! 인생’을 쓰고 있다. 이게 바로 나의 핵심활동이다. 여러분의 핵심활동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활동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하고 있는가?
사업도 인생도 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파트너들이 필요하다. BM 캔버스 상에서는 핵심파트너(Key Partner) 영역이 이에 해당한다. 사업도 공급자, 제휴처, 유통회사, 투자자 등 다양한 상대방이 존재하고 그들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때론 파트너의 역량을 극대화시켜 본 사업의 역량까지 제고 시킬 필요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하면 한 걸음 만 갈 수 있는 거리를 여럿이 함께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 목표를 향해 달려감에 있어 함께 가야 외롭지 않고, 격려도 받으며, 무엇보다 재미있게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인생의 파트너들은 다양한 분야에 두되 깊숙한 관계까지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이 부분을 항상 고민하며 또 좀 더 발전시켜 가고자 노력하는 분야이다. 여러분들은 이런 노력을 하고 계시는가?
이제, BM 캔버스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간다. 비용구조(Cost Structure) 단계는 경쟁우위를 지속시켜 날 갈 수 있는 비용구조에 대한 부분이다. 비용구조 측면에서 사업을 바라보면 원가위주(Cost Driven) BM과 가치위주(Value Driven) BM으로 구분된다. 인터넷 쇼핑몰, 항공업계, 제조업체 등 원가위주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이라면 비용축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이에 반해 고급호텔, 명품, 플랫폼 비즈니스 등 가치위주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이라면 더 큰 가치, 더 낳은 서비스를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어느 비용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고민 해보자.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항상 비용을 줄이며 각박하게 살 것인가, 아님 더 큰 가치를 얘기하며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비용구조를 가지며 살 것인가? 어떤 업종에서 일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회사에서 일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창업의 길을 택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어떠신가? BM 캔버스로 인생을 풀어보니. 비록 비데 변기에 앉아 즉흥적으로 떠오른 얘기지만 그래도 뭔가 남는게 있지 않으신가? 그럼 되었고. 뭐 나도 세상에 해악 보다는 가치를 조금 보태었다면 보람인 것이고. 이제 하얀 도화지를 한 장 꺼내서 자기 인생을 그려보자. 각 단계에 맞춰서 말이다. 그리고 그 도화지에 그려진 인생계획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자. 그럼 우리 인생이 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아 근데 또 장이 날 부르는 구나. 다시 비데에 않으면 이번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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