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한 어느 벤처투자자의 수줍은 고백
“이희우의 쫄지마! 인생”
일요일 아침 외출을 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데 여섯 살 배기 둘째 딸내미가 엄마 옆에 붙어 도발한다.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
“엄마, 화장 하니까 딴 사람 같아”
“그래? 이뻐?”
“(엄마를 툭 툭 치며) 아줌마, 누구세요? 아줌마. 아줌마.”
“(염소소리) 매에에, 매에에”
오늘은 지난 번 하지 못한 ‘사업 아이디어와 시장 기회’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사업 아이디어, 아이템은 무엇인가? 통상 창업에 있어서 아이디어란 존재하지 않거나 틈새가 존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컨셉을 말한다. 때론 아주 새로운 것이거나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선도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이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창업 아이템으로 적절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 절대 사업 기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죽이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그 아이디어가 노출되면 안된다고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애들을 종종 봐왔다. 정말 애들이다. 난 그들에게 말한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 절대 사업기회가 아니라고. 아이디어 만으론 절대 돈을 벌 수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몽상가나 다름 없다. 이들은 창업의 기본 과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흔히 기업가적 과정(Entrepreneurial Process)이라 일컫는데, 이는 기회를 인지하고 기회를 추구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능, 활동, 행동을 포함한다. 이런 기업가적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창업(새로운 업을 만드는 것)이 되는 것이다.
기업가적 과정은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 발견(Discovery), 컨셉개발(Concept Development), 자원확보(Resourcing), 실행(Actualization), 수확(Harvesting)의 과정을 말한다. 제일 첫 번째가 기업가가 아이디어를 내고 기회를 인식하고 시장을 알아가는 발견(Discovery) 단계이다. 발견이란 단계가 다섯 단계 중 첫 단계인데 그 첫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그것이 시장기회를 말하는 것도 아닌데 사업 전부를 다 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오산 중의 오산이다.
그럼, 시장기회(Market Opportunity)란 무엇인가? 시장기회란 것은 시장에서 고객들의 주머니로부터 돈을 꺼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고객들이 기업가의 제품/서비스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 아이디어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설사 이런 기회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쳐도 앞으로 네 단계가 더 남아있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그래도, 뜬 구름 잡던 아이디어가 시장기회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사업하는데 있어 큰 힘이 된다.
기회란 놈은 잡기가 쉽지 않은데 그건 생각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회는 적절한 시기(Timely)에 아주 매력적(Attractive)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뭔가 의미있는 가치를 전해주고(Value Proposition) 지속성(Durable)을 갖고 있는 단순 아이디어 이상의 그 어떤 것이다.
그럼 시장기회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첫 째가 기술이나 트렌드를 꾸준히 관찰하는 것이다. 최근 기술, 시장, 소비자 등의 트렌드를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시장기회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 둘 째가 문제나 고통(Pain Point)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에너지,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전기차, 저전력, 친환경 관련 제품이 나오게 되고, 소통(Communication) 이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사람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나 라인 등의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 셋 째가 틈새를 발견하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면 틈새가 보이기도 한다. 다들 친환경 전기차만 생각할 때 엔론 머스크는 관점을 틀어 최고급 전기차(Model S)를 만들었고, 모두 다 공개적인 소셜 서비스를 꿈꿀 때 연인들만을 위한 폐쇄형 소셜서비스 ‘비트윈(Between)’이 나왔다. 내가 보낸 사진이 왜 계속 남아 있어서 날 불안하게 만들지 라는 생각이 관점을 틀자 스냅챗이란 휘발성 메신저 서비스가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헉헉, 이제 다섯 단계 중 겨우 첫 단계를 마쳤다. 이렇게 발굴한 기회를 가지고 그 두 번째 단계인 ‘컨셉개발’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는 사업계획을 개발하는 단계 즉, 비즈니스 아이디어/아이템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기술하는 단계이다. 사업계획서에는 조직 비전, 임무, 목표, 실행계획 등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사업수행을 위한 전제조건(특허, 도메인, 저작권, 인허가 등)이 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컨셉개발까지 마치면 세 번째 단계인 그것을 실제 수행할 수 있는 자원확보에 들어가게 된다. 이 자원에는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포함한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인적자원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이 표현은 식상해서 쓰기 싫지만 나도 쓰게 되다니) 초기 창업팀 구성, 즉 팀빌딩 작업이란 큰 벽을 넘어야 한다. 여기서 좌절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본인이 뛰어난 기획자겸 개발자라면 이 부분은 비교적 어려움을 덜 겪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예비창업자라면 학교 다닐 때부터, 아님 직장에서 열심히 뛰어난 개발자들과 친분을 쌓아 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 단계에 와서도 개발자 하나 못 구하고 있으면서 아이디어는 죽이는데 라는 소리만 하고 있을 것인가?
물론 팀빌딩에서 개발자 구하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른 많은 난관들이 존재한다. 과연 지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고, 초기 임직원들의 동기부여는 어떻게 하며, 그들과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팀을 이끌어 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도, 의사소통 능력도, 친화력도 덕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잘 못할 것 같은 예비창업자라면 우선 인간부터 되어야 한다.
팀이 어느 정도 구성이 되었다면 자기 자금은 얼마를 투자할 것이며, 초기 투자금은 얼마나 어디에서 유치할 것인지 자금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초기 자금은 가급적 적게 하는 것이 좋다. 왜냐면 아직까진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져 있는 단계가 아니어서 실패확률이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기능이 구현된 제품이나 서비스인 최소존속제품(MVP)을 출시할 수준의 자금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래야 실패하더라도 타격이 적어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그 실패를 통해 고객과 시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유명 엑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의 폴그래험도 ‘빨리 출시하라(Release Early)’ 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너무 천천히 출시해서 죽는걸 봤지만, 너무 빨리 출시해서 죽는 스타트업은 하나도 못 봤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네 번째 단계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사용해서 실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실행 단계이다. 서비스도 오픈하고 매일 매일 서비스 운영을 신경쓰면서 측정하고 분석하고 개선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고객이 유입이 되었는데 그 고객의 연령대, 선호도, 유입경로 등 기본적 고객 프로파일 분석도 안되어 있는 것이다. 측정 및 분석이 되어야 마케팅도 할 수 있고 고객 유지(Retention)도 가능해 진다. 그렇기에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거기에 분석툴 하나 정도는 꼭 붙여 놓아야 한다. 요즘은 구글에서도 멋진 애널리틱스 툴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지 않나?
이제 다섯 번째 단계인 수확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는 사업을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단계이다. 네 번째 단계에서 분석한 것을 토대로 그 사업을 중단해야 된다면 사업을 접던가(사업 청산) 아님 다시 할거면 첫 단계로 돌아가면 된다. 첫 단계로 돌아가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하는 이것을 사업 아이템 변경(Pivot)이라 한다. 만약 사업을 계속 하게 된다면 기존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다섯 단계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이 든가? 참으로 지치고 힘든 여정이다. 우리가 장거리 등산 코스를 가더라도 경치 좋은 곳에서 쉬면서 물 한잔 하고 가듯이 사업도 마찬가지 이다. 이 봉우리 넘어서 한번 쉬고 저 봉우리 넘어서 한번 쉬고, 즉 이정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달성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가야 등산도 할 만하고 즐거운 것이 되듯 창업이란 험한 여정을 떠나는 이들은 장단기 목표를 정하고, 특히 단기 목표를 자주, 많이 정해서 작은 성공(Micro Success)을 많이 맛 보면서 여정을 지속해야 한다.
이번 글 쓰면 연재가 두 번 밖에 남지 않는다 생각이 드니 글이 주저리 주저리 길어진다. 창업자 및 예비창업자들을 아끼는 어미의 마음이라면 넘 심한 것 같고, 선생(先生, 먼저 태어난 사람)의 마음 정도라고만 해둬야 겠다. 하튼 이 표현도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몇 가지 강조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아무래도 시장기회를 아는 것이 사업 성공의 첫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멋진 시장기회를 발견하기 위해 몇 마디 하겠다.
1. 너가 잘 하는 것을 하라
파티게임즈 대표 이대형은 모바일 게임사 창업 전 커피숍을 연 적이 있다고 했다. 커피숍을 경영하면서 원재료 구매, 종업원 관리, 테이블 회전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게임사 창업을 하고 나니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임이 커피숍 경영하는 게임이었다고 한다. 어느 게임사 창업자가 커피숍 게임을 커피숍을 직접 경영해본 이대형 대표보다 잘 만들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온 게임이 ‘아이 러브 커피’ 이다.
2. 모르면 시장과 고객에게 직접 물어봐라
소셜 커머스 그루폰은 원래 킥스타터와 유사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사이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업이 잘 안되고 다른 사업을 뭘 할까 구상 중에 건물 1층에 있는 피자가게에 갔는데 그 가게가 점심시간 이후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그 피자집 쿠폰을 할인해서 팔아보기로 했다. 첫 20명의 고객이 이 쿠폰을 구매하자 시장기회를 보고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가져다 스킨을 바꿔 그루폰이라고 이름 지은 다음 날마다 상품을 올렸다.
3. 너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라
파이브락스(전 아블라컴퍼니)는 원래 예약왕 포잉, 블레틴 등을 만들었던 모바일 앱 서비스 회사였다. 이창수 대표의 표현에 의하면 5Rocks라는 서비스는 예약왕 포잉을 서비스 하면서 백엔드에 만들어 놓았던 사용자 데이터 분석 솔루션이 모태로 실험적으로 만든 이 솔루션에 파트너 기업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서비스인데, 따로 쓰게해주면 안되겠느냐’는 니즈와 요청이 다수 있어서 별도로 분리해서 만든 서비스이다. 즉, 회사가 원했던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이 원했던 서비스를 주력으로 삼아 회사의 아이템을 완전히 변경한 것이다. 기존 포잉 사업부문은 타 회사에 매각해 버렸고.
4.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해라
고객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스타트업 중에 VCNC(비트윈) 만한 기업이 또 있을까? VCNC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개발과 고객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커플앱으로 우뚝 선 것이 아닐까?
P.S.
상기 내용은 ‘기업가정신(William Bygrave 저, 동서미디어, 이민화/이현숙 역)’ 중 ‘기업가적 과정’ 부분을 참고해서 썼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은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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